붐비는 술자리, 많은 남자와 여자가 술을 나누며 말을 섞어가고 있다. 누군가는 주위를 끊임없이 환기시키며 시선을 자신에게로 돌리고 누군가는 그를 따라 조용히 무슨 말을 하는지 듣고 있다.
내가 가진 것 이상으로 과도하게 나를 드러내가며 나를 어필하고 그에 따른 주변의 시선을 즐기던 시절이 있었다. 물론 이성의 환심을 사기 위함이다. 어찌 보면 가장 원초적이고 순수한 본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고 볼 수 있다.
가끔씩 그런 오버스러운 행동은 성공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내가 원하는 누군가의 눈에 띄어 좋은 만남의 시작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누구나 뻔히 말하는 그 세월이란 놈이 흐르고 보니 더 이상 내가 주인공이 아니어도 누군가에 시선을 받지 않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그저 한 사람의 청중이어도, 대화를 주도하는 사람이 내가 아니더라도 괜찮다. 나도 그저 웃고, 박수치고,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면 그걸로도 좋다. 점점 삶에서 ‘내’가 지워지고 있다.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로 시선이 옮겨가고 있다. 더 이상 나만을 위한 삶을 살지 않고 타인과 나눌 수 있는 삶을 꿈꾸고 있다.
내가 나로서 온전히 존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나아가 내가 운 좋게 가진 것들을 많은 사람들에게 환원하고 싶은 마음도 든다. 내가 운 좋게 누린 몇몇 혜택을 그러지 못했던 다른 사람들에게 주고 싶다. 나는 참 운이 좋은 사람이다. 운 좋게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그리 못생기지 않았으며 적당한 키에 건장한 체구를 지니고 있다. 또 정말 감사하게도 곧잘 돌아가는 머리를 받게 되었다. 이 정도면 정말 훌륭하다. 하지만 그동안은 못내 가지지 못한 것들에 집착하며 스스로를 괴롭히곤 했다. 더 가지지 못함에 집중하여 나를 괴롭히고 또 괴롭혔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면 스스로를 자책하고 마음을 꼬집었다.
이제는 괜찮다. 더 이상 지나가는 세월을 붙잡으려 들지도 않고, 마음을 사기 위해 무절제한 노력을 하지도 않는다. 그저 오늘에 감사하고, 또 누군가와 내가 가진 것을 사심 없이 나누며 마음의 즐거움을 얻을 수 있으면 족하다. 사실 참 짧은 인생이다. 그렇게 느낀다. 생각보다 지내온 날은 많고 앞으로 지낼 날은 많지 않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