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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도 배웁니다 May 22. 2018

깨끗한 기분

밤이 되면 샤워를 한다. 운동을 하든 낮잠을 자다 뒤척이며 땀이 났든 어쨌든 몸에 쌓여 있는 찝찝함을 개운함으로 바꿔내고 내가 좋아하는 전구색 조명 아래에서 책을 읽는다.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조용한 가운데 글자를 조금씩 읽어 내려간다. 마치 오늘 하루는 이 순간만을 위해 존재해왔던 것 같다. 약간 빛바랜 책장을 넘기며 이따금씩 허브차를 마시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물을 끓이는 수고는 별로 하고 싶지 않다. 


행복이란 어떤 순간의 기억이다. 내가 내가 원하는 시각과 촉각과 그 밖의 온갖 감각을 즐기는 순간이 바로 행복의 순간이다. 그런 순간은 매일 하루 종일 지속되지는 않지만 어떤 타이밍이 딱 어우러질 때 나타난다. 아마도 내겐 샤워 후의 개운함과 따뜻한 조명과 책의 나무 냄새와 저자의 필체가 어우러지는 순간이 그런 순간이 아닐까.

 

그런 순간을 그 어떤 순간으로 대체할 수 있을까. 이런 순간이야 말로 내가 삶을 살면서 진짜 느끼고 싶어 하는 순간이다. 온 우주에 나만 존재하는 것 같은 착각 속에 빠져들지만 이는 결코 외로움의 또 다른 이름이 아니다. 오히려 따뜻한 우주의 일부로서 자연스레 존재하는 존재 의식을 불러일으킨다. 


특별히 대단한 추구를 하지 않아도 단순히 책과 낭만이 나를 지배하는 이 순간이 참 좋다. 어쩌면 삶은 이런 순간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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