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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도 배웁니다 May 21. 2018

꿈에 대한 이야기

사람들은 꿈을 꾸고 살면서 정작 꿈을 이룬 뒤의 삶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는 것 같다. 게임도 마찬가지다 286 시대의 게임인 페르시아 왕자를 보면 어느 지역에 갇혀 있는 공주를 구하기 위해서 수많은 난관을 돌파하는 페르시아 왕자의 모험을 게임화했는데 결국 왕자가 공주를 구하고 난 뒤의 삶에 대해서는 그저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로 끝난다. 사실상 모든 게임의 서사 구조가 다 그렇다. 어떤 위기가 발생하고 그것을 주인공의 뛰어난 퍼포먼스로 극복해서 그 후로 행복하게 산다는 서사 구조가 모든 어드벤처류 게임을 지배하고 있다. 


우리 삶도 게임과 특별히 다를 게 없다. 각자 지정한 미션을 따라 선형적으로 움직이고, 그 목표가 달성되거나 좌절되면 또 다른 목표를 찾아 움직인다. 그것을 죽을 때까지 반복하는 것이 이 인생이라는 게임의 주된 서사인듯하다. 일도 미션, 사랑도 미션, 생존도 미션이다. 끊임없이 퀘스트가 생겨나고 우리는 이를 반복적으로 수행한다. 사실상 뭐가 옳고 뭐가 그른지 가치판단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우리는 어쨌든 매일 움직여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뿌듯하게 오늘 무언가를 해낸다고 해서 그 뿌듯한 감정이 결코 며칠 이상 지속되지 않는다. 결국 또 무언가를 만들어내서 부지런히 움직여야만 우리는 직성이 풀린다. 


언제쯤 이 무한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을까. 그저 마음을 비우고 자연이 주는 목소리에 기대어 살면 그것이 대답이 될 수 있을까. 그것이 아마 정답에 가까울지도 모르지만 그런 삶 또한 왠지 심심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욕망을 잘 컨트롤해가면서 오늘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적당히 열심히 하면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현재 당면한 문제는 이미 세상이 가져다주는 희로애락의 감정을 모두 알아버린 것 같은 생각이 들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내가 어떤 분야에서 세계 1등 아니 국내 1등이라도 해본 것도 아니고, 어떤 절대적인 기준에서 그래 이 정도면 됐다 할 정도로 성취를 해본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내가 생각했을 때 다양한 측면에서 감정의 끝은 여러 번 맛본 것 같다. 그래서 약간의 좌절감을 느끼는 것 이유는 내가 앞으로 살아가면서 어떤 이벤트를 겪든 결국 감정의 오르내림은 지금까지와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심이 계속 들기 때문인지도. 


우리가 온라인 게임을 하다 반복되는 퀘스트에 지치면 그저 게임을 종료하고 삭제해버리면 그만이지만 사실 인생은 내가 스스로 로그아웃할 수가 없는 게 문제이다. (물론 손등에 칼을 그으면 로그아웃되겠지만 그건 너무 극단적이잖아.) 그래서 앞으로도 몇 번이고 반복되는 인생의 쳇바퀴를 잘 살아내기 위해 자기 나름대로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누군가는 취미생활에 빠져들기도 하고, 누군가는 새로운 출발을 위해 다니던 직장에서 나와 창업을 하기도 하며, 누군가는 세계일주를 떠나기도 한다. 아니면 최소한의 생활의 변화라도 주기 위해 헬스장이라도 끊던지. 


결국 모든 게 진정한 해결책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그저 임시방편일 따름이다. 어떤 큰 만족감도 반복 시행 앞에 무릎을 꿇게 되는 것을 우리는 삶 속에서 많이 경험해왔다. 특히 늘 새로운 것을 찾아 헤매는 성향의 사람일수록 그런 권태감을 느끼는 빈도는 점점 더 자주 심하게 온다. 그래도 찾아 헤매야 한다. 그것밖에는 딱히 답이 없다. 저기 사막을 온종일 걸어도 크게 깨달음이 없을 거라는 건 이미 알고 있지만 그래도 매일 조금씩이라도 한번 걸어봐야 한다. 그리고 걷다가 잠깐씩 웃게 되는 것. 그게 인생이라는 것은 이제 슬슬 눈치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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