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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도 배웁니다 Aug 04. 2018

소담길

부엌에 된장찌개 냄새가 자욱하게 퍼지고, 내 방 안에서 저녁 식사를 은근하게 기다릴 때의 마음이 그립다. 사실 매우 사소한 영역이었지만, 홀로 살게 된 이후 더 이상 맛보지 못하게 된 삶의 재미 중의 하나였지 싶다. 


한동안은 당연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게 된 것들이 있다. 심지어 누군가가 의식적으로 인지시켜주지 않으면 그게 당연했다는 사실조차도 인지하지 못할 때가 있다. 좋은 일인지 슬픈 일인지 모르겠다. 그저, 인간은 주어진 환경에 어떻게든 맞추어지는 동물이라는 것을 종종 느낄 뿐이다. 


오늘도 맥주 한 캔을 했다. 고소하면서도 달큼한 식감이 마음에 든다. 적절하고 느린 속도로 취기가 오르는 것도 마음에 든다. 그저 흘러가는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서 서서히 잠에 빠져드는 것도 마음에 든다. 그러다 잠에서 깨어 읽다만 책 한 권을 꺼내 들고 잠시간 활자에 내 몸을 녹이는 것도 좋다. 


좋은 문장을 발견하면 기분이 좋다. 섬세한 마음을 느낄 수 있을 때 기분이 좋다. 그 섬세한 마음과 내 바이오리듬이 겹쳐지면 그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작가의 글씨와 내 안의 그 무엇이 무언가 통했다 싶을 때, 그 작가를 다시 보게 된다. 누군가에게 참 좋은 사람이 있다고 자랑하고 싶다. 그게 문장이 가져다주는 힘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생각해보면 많은 것을 이미 놓치고 살고 있지 않은가 싶다. 어렸을 적에 시간 가는지 모르고 골목길에서 뛰어놀던 나는 더 이상 없다. 어느 순간 책상에 앉아있고, 서류와 씨름하며, 누군가와 반목하고, 지식을 자랑하고, 논리와 겨루기를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별로 그런 삶은 원하지 않았다. 그저 엄마가 만들어주는 따뜻하고 달콤한 팬케이크를 먹고 싶었을 뿐이고, 그리고 시험에서 100점을 받아서 엄마에게 잘했다는 칭찬 한마디를 듣고 싶었을 뿐이다. 


그러던 내가 어느덧 성인이 되어 스스로 인생을 재단하고, 정의하며, 이러쿵저러쿵 입만 살게 되었다. 뭐 딱히 후회랄 건 없지만, 이게 진짜 나의 자유의지로 일구어낸 것인가 하면 속 시원하게 그렇다고 답변할 수는 없다. 결국 모든 것은 우연이 얽히고설켜서 만들어진 덩굴 같은 것인가. 늘 내는 문장의 결론과 같이 답은 정확히 모르겠다. 오감이 만족되면 나도 만족한다. 내 뇌가 만족했다고 신호를 보낸다. 그냥 그렇다고 밖에 대답할 수 없는 내 자신이 그리 밉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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