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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도 배웁니다 May 19. 2019

어느 밤

하루 종일 누워있었다.

온몸이 무거웠다.

땅거미가 지고 온 밤이 도래했을 때 밤거리에 내 몸을 맡겨야겠다는 생각.


하루 종일 비가 왔기에 외투를 걸쳤다.

일단 카페로 가서 아메리카노 한잔. 곧바로 시청공원으로 발길을 돌린다.

비 때문에 적당히 촉촉해진 바람이 내 뺨을 적시고, 기분이 다소 좋아진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틀고, 흙길을 걷는다.


아무도 없다.

간간히 펼쳐진 가로등만 내 시야를 밝혀줄 뿐, 나머지는 온통 흙길을 걷는 소리.

그 공백이 좋다.

오늘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지금이다.


시청공원을 멀리 한 바퀴 도는 이 시간. 세상과 함께하지만 적당히 유리되어있는 듯한 기분이 드는 이 시간. 적당히 센치하지만 크게 오글거리지도 않는 기분.

어쩌면 남자기 때문에 고요한 밤길을 걷는 특권을 누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계속 걷고 또 걷는다. 몸이 조금씩 더워진다.

외투를 벗었다. 외투를 벗는 새 아메리카노가 흘러넘쳐 팔이 더럽혀졌다. 하지만 내 기분은 그런 사소한 일에 영향받지 않는다. 지금 나는 밤에 푹 잠겨있다.


밤 냄새, 비 냄새, 간간히 맡아지는 풀 냄새에 정신을 맡기고 있다.

저 멀리 정자에서 작은 불빛이 보인다. 누군가가 작은 소리로 대화에 열중하고 있다. 약간의 경계와 따스함이 공존하는 기분이다. 불빛은 살짝 로맨틱하다.


오늘 비가 오지 않았다면 느끼지 못했을 냄새. 그 냄새에 집중해본다. 촉촉하면서 적당히 비린 냄새. 난 이 냄새가 좋다.


30분의 시간 동안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저 주변에 집중할 뿐이다. 음악 소리, 흙 소리, 그리고 공기 소리에 집중할 뿐이다. 마음이 투명해진다.


술이 마시고 싶어 졌다.

오늘은 포도주를 마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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