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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연 May 24. 2023

내 관상엔 남자 복이 없나요?

여자의 수염과 남자 복

 

“선생님, 저는 다른 복은 다 있는 것 같은데 남자 복만큼은 없는 것 같아요.”     


            40대 그녀는 나름 사회적으로 성공한 축에 속했다. 모난 곳 없이 단정하고 예쁘다.

                        다만 눈에 띌 정도로 거뭇거뭇한 수염에 체형이 건장한 모습이었다.

  



  여자에게 있어 수염과 체형은 남자 복과 관련이 있다. 그냥 보는 사람은 알 수가 없고(見), 목적을 가지고 보는 사람은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를 것 같기도 하고(視), 보이지 않는 것까지 꿰뚫어 보는 사람의 눈에는 보인다(觀). 관상(觀相)한다는 것은 육안(肉眼)으로 보는 견(見)의 차원을 넘어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세밀히 살펴 심안(心眼)으로 본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즉 내면의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외형으로 나타난 형상을 관찰하는 것이다.      


  견(見)은 See. 눈을 뜨면 그냥 자연스럽게 보이는 겉모습을 말한다. 숨겨진 이면과는 상관없이 견의 단계에서는 ‘보이는 것이 다이다’.      


  시(視)는 Look. 견보다는 좁은 의미로 무엇인가를 보기 위해 관심을 기울여서 의도적으로 보는 것이다. 사람의 형상을 전체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얼굴이나 신체의 어느 특정 부위를 살피는 것과 같다.    


  관(觀)은 Thought. 관의 단계는‘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이다. 견과 시의 뜻을 포함하고 있지만 보이지 않는 것까지 생각하여 본다는 뜻이다.  밖으로 드러난 형상을 통해 내면의 상태를 파악한다. 겉모습을 통해 내면에 흐르고 있는 기질을 유추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사회적 관계성, 이성과의 관계 등도 대략 알 수 있다.      




  이제 그녀의 이면을 들여다보자.


  얼굴 털의 색상과 질감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다. 미국 피부전문의 해들리 킹 박사에 따르면 여성의 수염은 유전자와 호르몬의 연합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다. 그러다가 남성 호르몬인 안드로겐 분비량이 증가한다거나 호르몬 균형이 깨지면서 수염이 나타날 수 있다고 한다. 남자다운 남자는 수염이 있고, 여자다운 여자는 수염이 없다. 여자가 수염이 난다는 것은 기질 자체가 여성적인 성향보다 남성적인 기질이 더 강하다는 의미가 된다.     


  호르몬에 따른 남녀 간의 기질은 음양의 조화로 설명할 수 있다. 음과 양의 어우러짐은 삼라만상의 작동원리이기 때문이다. 남자가 보통은 양이되나 여성이 활발하게 사회 활동을 하는 것을 기준으로 본다면 여자가 양이될 수도 있다. 이런 연고로 여자가 사회적 능력이 월등하면 상대적으로 남자는 그보다 조금 못한 사람을 만나야 좋은 궁합이 된다.     


  음양은 한쪽이 왕성하면 다른 쪽이 위축되고, 다른 쪽이 뻗어나가면 한쪽이 물러나며 서로 맞물려 끊임없이 돌아간다.  양은 음을 보살피고, 음은 양에게 에너지를 넣어주는 관계가 반복되면 무한 에너지를 발휘할 수 있다. 남성적인 기질의 여자와 여성적인 기질의 남자가 만나 서로 조화를 이룬다면 오히려 발전적인 관계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남자는 대체적으로 양적인 기질이 강하다. 양의 특징은 받는 것보다 표현하고 주는 것에 우선적으로 특화되어 있다. 그런 까닭으로 남자가 여자를 좋아하면 뭔가를 주고 싶은 것은 음양의 이치다. 여자가 선물로 애정을 확인하는 것도 음양의 이치다. 하지만 여자가 먼저 적극적으로 대시하고 베풀고 마냥 주고 싶어 한다면 그 반대의 남자를 만날 수밖에 없다. 이런 경우는 받는 것보다 주는 성향이 강한지라 받을 복이 적어진다. 그녀의 성향도 받는 것에 비해 먼저 주고 많이 주는 편이다. 따져보면 여성은 여성으로서의 기질에 충실할 때 남자 복이 있다. 여자는 음이지만 양적인 기질도 적당히 있어야 하고, 남자도 양이지만 음적인 기질도 어느 정도는 있어야 한다.




  관상은 기질을 대변한다. 그런 면에서 관상학은 알고 보면 매우 과학적이다. 인간에게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가치임에도 여전히 학(學)으로서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는 운명(運命)을 논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리 인간사에 통찰력이 생긴다 한들 인간의 길흉화복을 누가 감히 판단할 수 있단 말인가.      


 관상은 변한다. 모든 것은 마음에 달려 있다. 관상도 마음먹기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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