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식간이다.
열 살 난 아이가 할퀴어서 피가 오른다.
나는 그럴 때 좀 차분해진다.
왜,
뭐가 마음에 닿지 않아서 답답해진 걸까.
이번에는 좀 아프다.
아무 말하지 않고 피가 끼친 손가락을 보였다.
아이도 놀랐다.
주저주저하다가
미안,
말해준다.
괜찮아,
나도 말해준다.
바들바들 불안해하면서 다시 한번
죄송합니다,
평화로운 마음이 깨졌구나.
나는 행동이 부른 다음 장면을 알려주려 한 것뿐인데
그리고 적절한 대응,
너는 선생의 침묵과 피가 당황스러웠을 뿐이네.
손을 잡고 핸드크림을 발라준다.
다시,
진짜 괜찮아, 밴드를 붙이면 되잖아.
네가 밴드를 골라줄래?
아이들은 손을 뻗고 있다.
그 방식은 수천수만 가지라고 본다.
외면하는 모든 순간마저 어쩌면 열심히 닿고자 하는
몸부림일 수도 있다.
그래서 관찰과 라포 형성과 끌어안는 일만큼
귀한 일은 다시없다.
공격이라고 규정하는 순간부터 투쟁이 된다.
공격은 나를 해치고자하는 의지를 담는 순간 의미가 있다.
아이들이 보여준 수많은 방식 중,
서투른 방법들에 불과하다.
할퀴고 꼬집고 때리거나 키 큰 아이는 어깨를 누른다.
대소변을 감행하거나 무는 등의 행동들은
그들이 우리에게 보내오는 정돈되기 전의
의사표현일 따름이다.
그러한 장면들까지 읽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 진짜 소통을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