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집 혹은 저항
신체적이면서 즉각적인 반응
그리고 함구 혹은 비명
만난 지 얼마 안된 아이에게 이런 현상이 발생하면
나는 잠시라도 그와 웃었거나 집중했던 순간을 떠올린다.
우리가 함께였던 순간이 있었다면 그 치료는 아주 느려도 분명 움직일 수 있다고 믿어보는 것이다.
다소간 신체적인 무리가 있고 급격한 감정기복이 있으나 분명 가능의 영역이 있기에,
분명 우리는 언어와 표정으로 소통하였기에,
나이에 부적절해도 까꿍놀이가 좋다면
한쪽 눈을 가리고 숨바꼭질 그 끝에 네 웃음이 있다면
나 역시 슬며시 미소가 돈다.
자주 여기저기 다치는 너는
타인의 우발적 사고장면에서 멈춘다.
막무가내로 아저씨를 보여달라는 너에게
화난 아저씨를 찾아보자고 설득했고,
다음은 떨어지는 이번엔 네가 부딪치는을 제안한다.
우리는 이 순서가 세 번째 돌아가자 흥미로워졌다.
배부른 아저씨, 고기 잡는 아저씨, 넘어진 아저씨부터 운전하는 아저씨와 좋은 아저씨까지 거침없이 영역을 건넜다.
아저씨는 아줌마를 부르고 다음은 아기, 또 스스로의 이름과 그걸 따라하는 선생님과 그냥 그냥 사람에 도달했다.
그렇지 그냥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사람도 멍때리는 사람도 아무런 동작이나 표정이 없을 수도 있다.
모든 가능의 영역을 확장할 수 있었고,
우리는 집중했다.
문해력이 있고 인지가 어느 정도 있는 아이에게는 반드시 공부를 시켜보자는 접근은 심심하다.
간장이나 소금이나 혹은 자극적인 라면수프에서 우리는 좀 더 다양함을 느낀다.
즐거운 의사소통, 참여하고 있다는 확신으로
우리 목표를 결정한다.
나는 너를 받아들인다.
처음에는 예민한 아이에게는 조심스럽게 접근한다.
그런데 난 커다란 음성과 거친 웃음의 결정체다.
모두가 너에게 맞춰줄 수 없는 경우의 수도 알아야 하기에...
내가 너를 끌어안듯이
너도 나를 알아가자.
일단은 그게 치료목표 1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