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과 고혈압

거절과 통과 언저리에서

by 다듬

나라에서 너 백신을 맞아야 한다, 고 하기에 바로 예약을 했다.

직업 특성상, 아이들을 만나는 사람들을 우선으로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예기된 수순이었다.

중형 종합병원이라 그런지 사람들은 많았다.

긴 줄을 서서 예진표를 작성하고 의사를 대면했다.

지난해 건강검진 때 혈압이 좀 높다고 했던 말이 생각나서 건네었더니

간이 혈압계를 들이대었다.

엄청난 숫자가 나왔다.

잠시 대기하다가 다시 재보자고 했다. 아주 조금 떨어졌다.

최상의 컨디션에서 맞아도 아프다고들 하는데 다음으로 미루고 혈압을 조절하란다.

나이도 젊으신데 혈압 이러다가 큰 일어난다고 의사는 겁을 잔뜩 주었다.

그래, 나도 덜컥 두려웠다.

사는 동안은 건강하게 살자, 나는 그럴 수 있는 몸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자부하고 살았는데

열흘간 밥은 거의 먹지 않았다. 야채를 생으로 먹고 쪄서 먹고 볶아서 먹었다.

언니가 바로 보내온 간이 혈압계로 시도 때도 없이 혈압을 쟀다.

땀을 뻘뻘 흘리는 운동을 날마다 했고, 예전보다 더 자주 걸었다.

완전하게 잡히지는 않은 위험한 수치, 그러나 백신 접종은 가능해졌다.

한산한 병원, 마지막 날이란다.

병원 사람들은 극도로 친절하고 엘리베이터까지 잡아주며 나의 안위를 염려했다.

나는 커피를 한잔 마시고 샐러드를 산 뒤 귀가했다.

팔이 약간 얼얼한 느낌이 있었으나 발열은 없었다.

세 시간 경과, 그냥 타이레놀을 두 알 먹어보았다.

열두 시간 경과, 자기 전 타이레놀을 한 알 먹었다.

그리고 스무 시간이 지났다. 약 다섯 시간의 기상 후에 내 몸은 아직도 멀쩡한 편이다.

늙으면 반응이 없다는 풍문이 있다.

등치가 작은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우리 주변 통계도 있다.

팔이 좀 더 무거워진 느낌은 있다.

그러나 36.5도를 유지하고 있고, 몸살기 역시 나타나지 않았다.

난 늙고 작은 사람인 걸로 비논리적인 결론을 내리는 수밖에 없다.


외가와 친가 할머니들은 모두 아주 건강한 몸으로 아흔 이상의 삶을 누리셨다.

건강체를 주신 것이라고 우리는 스스로를 다진다.

백신을 맞는다.

실은 독감주사도 한번 안 맞았는데... 다시 열흘간 과일과 야채, 운동을 계획한다.

내가 나의 생을 주도한 적은 없으나 나의 죽음에게는 주인이 되기 위하여 노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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