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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영 Jul 30. 2020

소금인형

감정 요리/ 위로



프랑스 요리를 한지도 내년이면 10년이다. 어느새 강산이 한 번은 변한다는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카페 하겠다고 마음먹고 준비한 시간 10년, 실행에 옮겨 매장을 운영 한 시간 9년이다.  

그동안 많이 받았던 질문이 왜 프랑스 요리하느냐 라는 질문이었다.  

이 질문에 답을 하려면  19년 전으로 시간을 돌려야 한다.


나의 24 시간은 나만 것이 아니었다. 하루가 시작되면 나는 엄마, 아내, 며느리로 살아야 했다.

가족의 식사를 챙기는 일에 나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특히 주말은 하루 종일 주방을 벗어 날 수없었다.

일요일 아침 여섯 시부터 주방에 들어간다. 가족들이 일어나기 전에 아침 식사 준비를 마친다.  아침 식사를

8시에 하고, 설거지를 하고, 주방 개수대에 기대어 한숨 한 번을 쉬고 시계를 보면 10시가 된다.  집안 정리를 하고, 허리 펴고 한 숨 돌리면 거실에 있는 뻐꾸기시계가 12시를 알린다. 그리고, 초인종이 울린다.


매주 일요일은  주변에 사는 시댁 친척들이 점심을 먹으러 온다. 큰 아주머니 소리가 들린다. 그 뒤에 큰 형님과 조카들이 들어온다. 조카들은 거실에 들어오자마자 소파에 올라가 뜀 띄기를 시작한다.  정신이 없어지려고 할 때쯤 초인종이 또 울린다. 둘째 아주머니네가 들어온다.  남자아이들이라 그런지 신발 벗는 소리가 요란하다. 거실은 고속터미널 대합실처럼 시끌시끌하다.  이렇게 모인 인원이 15명이 된다.

나는 친척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서둘러 주방으로 들어온다. 형님들도 주방으로 들어온다. 식탁에 앉을자리가 없어 거실에 큰 교자상 두 개를 편다.  큰 거실은 식당이 되고, 나는 단체 손님 받는 주방 아줌마가 된다.


 간단한 메뉴를 선택해도 15인분 벅찬 일이었다. 비빔밥을 해도 볶은 야채들은 쟁반에 산처럼 쌓이고, 계란도 한판을 다 부쳐야 한다. 비빔밥 담을 그릇도 탑처럼 쌓인다.  

겨울에는 만두를 잘 빚어먹었다. 만두소를 버무리는 통은 갓난아기 세명은 함께 목욕 시릴 만큼 컸다.  이 통에  다진 김치, 두부, 고기, 야채를 버무리면 만두소는 산처럼 쌓인다. 만두 피도 산처럼 쌓아진다.

만두를 빚기 시작하고, 빚어진 만두를  찜통에 찐다. 교자상만 한 광주리에 흰색 면 보를 깔고 찐만두들을 식힌다.  아이들은 식기도 전에 만두 먹기에 바쁘다. 먹는 속도가 찌는 속도보다 빨라 광주리에 만두가 쌓일 시간이 없다. 큰 통에 담긴 만두 소을 다 빚었는데도 남아 있는 만두는 한 광주리가 채 안 된다.  먹성이 대단했다. 나는 매주 주말마다 먹깨비들의 잔치상을  차려 냈다.

  




서울에 사는 큰 형님은 차가 막힌다고 가고, 둘째 형님은 아이들이 어려서 먼저 가고 시댁에서 함께 사는 나는 개수대에  쌓인 설거지의 주인이 된다.  그렇게 밀물과 썰물처럼 친척들이 간 자리를 치우고 나면 오후 3시쯤 된다. 커피 한잔을 내려서 식탁에 앉는다. 시어머님은 앉아 있는 나에게 저녁 메뉴를 물어보신다.

삼시 세 끼를 드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짜증이 올라왔다. 하지만 시어머니한테 화를 낼 수없었다.

화를 참아서 그런지 목이 잠겨 볼멘소리가 났다.

난 또 식탁을 차렸다. 저녁 7시 저녁 식사를 마치고 치우고 났더니 9시가 넘었었다. 14시간 동안 주방 개수대와 한  몸처럼 지냈다. 손은 물에 불어서 부어 있고, 등은 나무토막처럼 딱딱해지고 발바닥은 깨진 유리를 밟은 것처럼 아팠다.  

시부모님은 일찍 주무시고, 남편과 아이도 침대에 누워 잘 준비를 했다.  나는 식탁에 앉아 터미널 대합실 같았던 거실을 바라보았다. 거실은 불 꺼지고 텅 비었다. 관객이 빈 무대를 바라보듯 나는 넋이 나간 것처럼 한참을 앉아 있었다. 손가락 한 개도  들어 올릴 힘도 남아 있지 않았다.


가족을 위해 식탁을 차는 일은 보람 있는 일이다. 하지만, 하루 종일 음식 만드는 기계가 되는 것은 보람보다는 고통이 된다. 마치 소금 인형처럼  바다에 흔적도 없이 녹아 버리는 것 같았다.

나를 위한 시간은 본능적인 것을 제외하고  모든 시간을 가족을 위한 시간을 보냈다.

결혼한 여자의 일상이지만 먹고 싶지 않을  먹어야 하고, 자고 시간에 일어나야 했다.  욕구와는 다른 시간을 보내야 했다. 앞치마를 입고 주방에 있는 시간은 가족을 위한 사명감으로 꿋꿋이 버티어야 하는 시간이었다. 거친 일을 마치고 마시는 소주 한잔처럼 차를 마시며 나를 달랬다.  한잔 마시는 것도 여유롭게 마실 시간이 없었다.  이런 시간의 반복으로 나를 잃어버렸다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는 시간은 고귀하다고 한다. 한동안은  고귀함을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십 년, 이십 년을 보내고 있다면 감정은 달라진다. 나를 잃어버리는 상실감, 허무함으로 시간이 지나갈수록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추천 레시피


기운을 보충시켜주고, 소화가 잘 되는 상실감과 허탈감을 달래 줄 수 있는 포근한 이불 같은  요리를 추천한다.



양송이 수프

Soupe aux champignons


고기 구울 때 빠트리지 않고 불 판에 올리는 양송이버섯. 고기보다 더 맛있다는 버섯이다.

실제 영양학적으로도 양송이버섯에는 단백질이 풍부하다.  식이섬유와 비타민 D도 많이 들어 있다.

면역력을 높여 주고, 피로 물질을 줄여주며, 간세포를 보호해주는 성분도 있다. 이렇게 풍부한 영양소가 들어 있는데도 양송이버섯의 칼로리는 낮다.

더구나 소화 효소인 트립신과 아밀라아제가 함유되어 있어 소화도 잘된다.


양송이 수프 요리는 비교적 간단하다.


달구어진 팬에 버터를 녹이고 양파, 마늘을 넣고 갈색빛이 될 때까지  볶는다. 썰어 놓은 양송이가 부드러워질 때까지 볶는다.  우유와 생크림을 1:1로 넣고 소금으로 간을 한 후, 약한 불로 뭉근하게 끓인다.  수프 그릇에 담고 파마산 치즈를 갈아서 얹고 후추를 갈아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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