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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영 Aug 21. 2020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른 서운함

감정 요리/ 서운함



빗소리에 잠이 깼다.  하늘에서 물을 쏟아붓는 것 같았다.

거실 창문을 열어 밖을 내다보니 길은 빗물로 출렁였다.  

앞이 안 보일 정도로 하얗게 내리는 비를 보며 찾아드는 감정은 시원함이었다.

한증막 속에 있는 것이 답답하고 숨이 막혔던 가슴이 찬물에 샤워하는 것처럼 시원했다.  


코로나로 일상이 많이 변했다.  한 달에 14일만 일하는 딸, 일찍 퇴근하는 남편,  

집콕이라는 신조어가 나올 정도로 집에서 가족이 함께하는 시간이 예전에 비하면 두배로 늘어났다.

휴가로 주어진 시간이 아닌 재난의 시간이라 편하지 않다.  코로나 19 감염자 숫자는 늘어가고 있다 예전에는 허용되었던 일상이 이제 규제받는다.  

두려움과 걱정이 매일 쌓인다.  답답한 일상이 이어지고 있다.


일찍 퇴근한 남편에게 저녁 메뉴를 무엇을 먹을지 물어보았다. 남편은 미간 사이를 내 천자로 찌푸렸다. 냉랭하고 무미건조한 어투로 말한다.

“대충 아무거나 먹어. 매일 먹고 싶은 거 먹고 어떻게 살아.”

무엇을 사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그저 음식을 해 주려고 먹고 싶은 것을 물어본 건데. 어이가 없었다.

밥 먹는 동안  딸아이한테 이런저런 잔소리를 한다. 딸아이는 한숨을 쉬면서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냉랭한 분위기에서 체할 듯이 식사를 마쳤다.

남편은  투 털이 스머프처럼 감사도 없고, 보기 싫은 것도 많고, 짜증 내는 것도 많았다

눈빛은 차갑고, 입은 꽉 다물어 말도 못 붙일 표정을 하고 있었다.

남편은 내가 엄마와 통화하는 내용을 듣고 나지막하게 짜증스럽게 말한다.

“어머니 백내장 수술비도 내가 내줘야 되는 거야”

“그 돈도 내가 내야 하는 거야. 내가 한국은행이야.”

코로나로 회사 운영이 어려운 남편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수개월 동안 매일 반복되는 배려 없는 말과 행동에 지친다.

불만의 본질은 돈 문제이다.  돈 문제로 매번 싸우게 치사하기도 하고, 비루해서 대응하지 않고 참고 있었다.  

나는 남편과 함께 있는 시간이 불편하고 답답했다.

우리 사이에는 점점 대화가 없어졌다

나는 남편이 말을 걸어도 짧은 단문으로 대답하고 자리를 피했다.

돈 버는 유세라는 말도 있듯이 나는 남편에게 돈으로 조롱당하고 있는 것 같았다.

사람의 진짜 모습을 보려면 어려움을 대체하는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고 한다. 요즘 남편의 진짜 모습을 보고 있다.

지울 수 없는 상처에 이러다가는 이별을 통보할 거 같아서  마주 대하는 시간을 피했다

시간 속에서 쌓인 상처에 수개월 동안 칼처럼 가슴에 꽂힌 상처가  더해져 마음이 달구어지고 있었다.

마치 여름 강렬한 햇빛에 뜨거워져 아지랑이가 생기듯.  남편과 모든 것이 그냥 싫었다.

집안에서 함께 하는 시간을 최소로 줄이기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고 새벽 4시에 일어났다.

한 집에 같이 살아도 활동시간이  다르면 타인처럼 살 수 있다.  

그런 상황이 딸아이도 불편한지 친구네 집에서 자고 들어 올 때가 많았다.  

가족이라는 둘레 안에서 타인이 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남편의 지인과 함께 저녁 식사 약속이 잡혔다. 하는 수 없이  그들과 함께했다.

지인들이 돌아가고 식탁을 정리하는데 남편이 말했다.

“오늘 저녁은 좀 과하다. 더 줄여야 하지 않아?”

그 말을 들은 순간 전기에 감전되듯이 가슴에 불이 붙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소리를 질렸다.

“야! 좀 그만 좀 해.”

손에 든 행주를 던지고 허리에 손을 얹고 전쟁터의 장군처럼 섰다. 폭탄을 던지듯이 감정을 쏟아 냈다.

남편은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내 말에 반박했다.

나는  쉼 없이 그동안에 불만과 상처를 토해냈다.

남편은 반박을 이어 갈 수없는지 밖으로 나갔다.  

온 힘을 다 모아서 말을 해서 그런지 목이 탔다.

물 한잔을 단숨에 마시고 식탁을 치우고 설거지를 했다. 개수대에서 설거지하는 나에게 남편이 말을 한다.

“미안 해. “

바람 빠진 공처럼 힘없는 말소리였다.

나는 못 들은 척하면서 설거지를 계속했다.  

남편의 미안해라는 말 때문인지 아니면 폭우처럼

감정을 쏟아내서 그런지 설거지가 끝났을 때

내 심장도 평온함을 찾았다.

내리는 비에 아지랑이가 없어지듯 마음에 아지랑이가 사라졌다.




추천 레시피

 

서운하다는 말은 하기 어렵다

상대에게 내  연약한 마음을 드러내기에

자존심이 상한다.

그렇지만 그대로 두면 해묵은 감정이 쌓인다.

때로는 상대방과 나 사이에 쌓인 벽을 깰 베짱이

필요하다.  

달구어진 땅에 아지랑이가 피어오를 때

비가 오지 않는다면 물이라도 부어야 하듯이.

마음의 굴절을 없애야 한다.  

 

장대비처럼  타들어가는 가슴을 시원하게 해 줄 수 있는 레시피를 추천한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매운맛과 짠맛이 생각난다.  

두 가지를 충족해주는 페페로 치로와 하몽을 이용한 요리이다.  

 

 

 

 

 

하몽 매운 오일 파스타

Pâtes au jambon piquant


하몽은 돼지 뒷다리를 소금에 절여 동굴 같은 그늘에서 좋은 곰팡이가  피도록 6개월에서 2년 정도 건조 숙성시켜 만든 생햄이다.  방부제나 착색료가 들어가지 않아 건강한 식재료이다

 

하몽에 짠맛을 해치지 않으려면 파스타를  요리할 때 소금을 아주 미량만 사용하거나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기분 좋은 짠맛에 씹는 식감과 매운맛이 더해져 스트레스를 날리 수 있는 식사를 기대해도 좋은 메뉴이다.



tip>>  씹는 맛을 더 느끼려면 면 파스타 보타

            푸실리 같은 숏파스타를 추천한다.

            하몽과 식감이 잘 어울리는 파스타이다.   


씨알 박람회 갔을 때 하몽 체험관에서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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