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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섬회계사 Aug 01. 2018

질투를 이기는 방법은 질투 대상을 축복하는 것입니다.

죄와 죽음보다 강한 은혜

<죄와 죽음보다 강한 은혜>로마서5장12-21절

 

우리는 간혹 왜 예수만 구원자냐고, 왜 예수만 믿어야 하느냐고 의문을 제기합니다. 왜 석가모니나 공자를 따르면 안 되느냐고 묻습니다. 여러분, 석가모니나 공자가 나쁜 놈이라서 그들을 따르면 안 되는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석가모니나 노자나 장자나 공자나 마호메트나 다 훌륭한 사람들입니다. 매우 탁월한 인류의 스승들입니다. 열정적으로 진리를 탐구한 구도자들입니다. 하지만 그분들이 아무리 훌륭하고 탁월하다 해도 어쩔 수 없는 아담의 후손입니다. 그리고 아담의 후손인 한 절대로 구원자가 못됩니다. 아담과의 언약은 영원히 유효하기 때문에 아담의 후손인 한 구원을 받아야지 구원을 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이면서 아담의 후손이 아닌 사람은 예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만이 구원자이시고, 예수님 안에만 구원이 있는 겁니다. 안타깝지만 그래요. 인류를 대표해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사람은 아담과 예수 밖에 없기 때문에, 인간은 아담 안에 있든지 예수 안에 있든지 둘 중 하나에 속하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 안에 있지 않은 사람은 다 아담 안에 있습니다. 석가모니를 따르는 자들도, 노자를 따르는 자들도, 마르크스를 따르는 자들도, 마호메트를 따르는 자들도 다 아담 안에 있습니다.

 

죄의 확대경이라 할 수 있는 율법이 세상에 들어오자, 사람들은 자신이 얼마나 심각한 죄인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가족이나 교회 공동체에서 그 공동체가 어떻게 될 것이냐 하는 것도 한 사람으로 인하여,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좌우됩니다. 바로 그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됩니다. “One for All, All for One.”이란 말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모두를 위하고, 모두는 한 사람을 위한다.”는 뜻입니다. 같은 의미로 <화엄경>에 “一卽一切 多卽一(일즉일절 다즉일)” 이란 말이 있습니다. “하나가 곧 전체이고, 전체가 곧 하나이다.”라는 가르침입니다. 한 사람은 모두를 위하고, 모두는 한 사람을 위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한 사람 아담 때문에 세상에 죄와 사망이 들어왔고, 한 사람 예수님 때문에 은혜와 의의 선물로 생명이 넘쳤습니다. 한 사람의 범죄로 인해 많은 사람이 정죄 받아 죄인이 된 것 같이, 한 사람의 순종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릅니다. 죄를 스스로 끊을 수 없지만 십자가의 능력으로 끊을 수 있습니다.

 

영국 런던에 목회를 잘하는 3명의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FB 마이어 목사님과 찰스 스펄전 목사님 그리고 캠벨 모건 목사님입니다. 어느 날부터인가 마이어 목사님의 마음에 다른 목사님에 대한 질투심이 생겼습니다. ‘나는 스펄전 목사처럼 설교를 잘하지 못하고 모건 목사처럼 리더십을 갖추지 못했구나.’ 마음에 질투심이 생기자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시기와 질투를 없애 주시옵소서.” 그러나 아무리 해도 질투는 그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기도하던 중 하나님의 인자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네 기도를 바꿔라. 질투를 없애 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그들을 위해 축복 기도를 해라.” 주님의 음성을 듣고 마이어 목사님은 기도를 바꿨습니다. “하나님, 스펄전 목사님과 모건 목사님의 교회에 복을 주시옵소서.” 어느 날 공개적인 기도 자리에서 마이어 목사님은 이런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모건 목사님의 교회에 복을 주셔서 사람들로 가득 차게 하옵소서. 그래서 들어갈 자리가 없어서 사람들이 남거든 우리 교회에 보내 주시옵소서.”

목사님들이 담임하던 교회는 모두 크게 성장했고 도시복음화를 위한 연합을 이뤄 하나님나라 확장에 힘썼습니다. 질투를 이기는 방법은 질투 대상을 축복하는 것입니다.

 

아담은 죄를 짓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진 채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대표입니다. 아담과 같은 삶을 온 인류가 살고 있으며 그런 삶에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그리스도께서 인간 대표로서 형벌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아담의 범죄에서 시작된 악이나 불행보다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님의 사역으로 인한 선이 훨씬 더 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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