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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섬회계사 Aug 05. 2018

나쁜 습관을 죽이는 방법

내 안의 죄 죽이기

<내 안의 죄 죽이기> 로마서6장1절-11절

 

11년 전쯤 모 언론사가 ‘거실을 서재로’ 캠페인이 한 적이 있습니다. 가족 간의 대화를 앗아가는 TV와 컴퓨터를 안방으로 물리고, 거실에 서가를 마련해 온 가족이 함께 책 읽고 대화를 나누는 거실문화를 만들자는 독서운동 이었습니다. 캠페인이 진행되는 1년 동안 8만9086가구가 참여해 9390가구가 보급형 책과 책장(10만 원 이내)을, 120가구는 맞춤형 책(50만 원 이내)과 책장(100만 원 상당)을 지원받는 등 모두 9510가구가 독서문화 운동에 동참했습니다. 아이디어를 제안한 직원은 회사로부터 창의상을 받았고, 캠페인 진행을 담당한 출판팀 기자 4명도 사내 표창에 이어 삼성언론재단이 주관하는 삼성언론상 특별상을 받았습니다.

 

그 당시 우리 집도 거실을 서재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거실에 TV나 장식품이 없습니다. 대신 책장과 책, 그리고 책들이 거실의 모든 벽면을 채우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방도 책으로 장식을 해놓았습니다. 도배 값도 절약되었습니다. 주변에 TV가 있으면 TV를 보고 책이 있으면 책을 보는 것이 사람의 습관입니다. 책 읽는 습관을 들이는 것은 환경을 바꾸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한편 돈 씀씀이가 많은 사람이 돈을 절약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기본적으로 사람들은 돈을 쓰면서 즐거움을 얻는 뇌구조가 되어 있습니다. 빚의 위험보다 돈을 쓰는 재미가 항상 우선하므로 빚을 내서 소비를 합니다. 돈 쓰는 재미는 지금 당장 맛볼 수 있는 반면 빚은 나중에 문제가 터지므로 시간차를 극복하지 못하고 당장 쓰고 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알면서도 실행으로 옮겨지지 않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돈 쓰는 환경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과소비로 인한 빚을 없애려면 소비를 어렵게 하면 됩니다. 가령 카드를 잘라 버리고 현금을 찾아서 쓰면 됩니다.

 

혹시 술을 끊고자 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과거에 크리스천이 되기 전에는 술꾼 이었던 내가 술을 끊었던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술자리에 가서 술을 먹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가장 쉬운 방법은 술자리에 가지 않는 것입니다. 독서, 과소비, 빚, 술, 담배 등 인간의 노력이나 의지만으로 어려운 일들이 있습니다. 이것을 도와주는 방법은 자신의 환경을 바꾸어 놓는 것입니다.

 

로마서 5장 까지는 모든 인류가 죄인이라는 사실과 여기에서 해방 받는 유일한 길에 대해서 설명 하였습니다. 한 사람 아담의 범죄로 인해서 모든 인류가 죄 가운데 사단 종노릇 하다가 결국은 영원한 멸망 길로 갈 수밖에 없었지만 또 한 사람, 둘째 아담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서 모든 와 있는 저주, 죽음, 고통 이 모든 영적 문제에서 해방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더 이상 과거의 삶에서, 옛 습관에서, 옛 체질에서 완전히 여기서 빠져 나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옛 습관에서 빠져 나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새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죄를 지으면 죄를 지을 때마다 속죄제를 드리기 위해서 짐승의 피를 흘려야만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Once for all)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모두 없애 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죄의 유혹이 올 때 쉽게 죄에 빠져들고 맙니다. 그래서 자신의 옛사람은 이미 죽었음을 기억하고,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께로부터 새 생명을 받아 새 사람이 되었음을 선포해야 합니다.

 

죄가 강할까요? 하나님의 은혜가 더 강할까요? 죄가 더 강할 것 같지만, 사실은 하나님의 은혜가 끄는 힘이 더 강합니다. 그 사실을 깨닫고, 그 은혜를 늘 사모하고, 추구해야 합니다. 칭의가 중생과 관계되어 있다면 성화는 성장과 관계가 됩니다. 우리가 주의 은혜로 거듭남과 동시에 근본적으로는 예수와 연합을 이루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Already not yet (이미 그러나 아직은)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미 천국에 가 있는 사람들이지만 아직은 이 땅에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영원히 죽어야 하고 영원히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야 마땅한 사람들이 자신의 공로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으니 이 땅에 살면서 잃었던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하는 것이 우리의 지상 과제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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