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뒤에 서 있던 사람

by 지니

사회복지행정을

20년 가까이 해왔다.

사람들은

오래 했으니 익숙하겠다고 말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말띠인 나에게 그 시간은 늘 쉽지 않았다.

매일 숫자와 싸워야 했고,

종일 의자에 앉아 있어야 했다.

움직이고 싶고,

사람 얼굴을 보고 싶고,

말보다 먼저 몸이 반응하는 나에게

행정은

늘 한 박자 느린 세계였다.

지금은

눈을 감고도

어떤 업무를 해야 하는지 안다.

이 시기엔 예산을 보고,

이쯤엔 서류를 정리하고,

문제가 생길 지점도

대략 예측할 수 있다.

그만큼

몸에 배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익숙해졌다고 해서

편해진 건 아니었구나.

행정은

틀리지 않게 해야 하는 일이었다.

숫자는

사정을 봐주지 않고,

서류는

감정을 이해하지 않는다.

그 사이에서

나는 늘

긴장한 채로 버텼다.

실수하지 않기 위해

조심했고,

조용히 했고,

몸을 웅크린 채로

하루를 마쳤다.

그 시간이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는지,

아니면 조금씩

나를 접어두게 만들었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이제 나는

행정을 떠나

이용자를 직접 케어하고,

같이 어울려 생활하는

담당자로 자리를 옮겼다.

결정을 내리기까지

쉽지 않았다.

행정만 하던 내가

과연 잘할 수 있을지,

괜히 나서서

누군가의 마음을

다치게 하지는 않을지

걱정이 먼저 앞섰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도 두렵다.

말 한마디,

표정 하나로

이용자가 상처받지 않을까.

내가 좋은 의도로 한 행동이

누군가에게는

부담이 되지 않을까.

행정에서는

숫자를 조심하면 됐지만,

이제는

사람의 마음을 조심해야 하는 자리로

온 것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런 마음이 드는 내가

아예 처음은 아니었다.

나는 오래

사람을 서두르지 않는 일을 해왔고,

말보다 침묵을 먼저 배우려 애썼고,

문제가 아니라

사정을 보려고 노력해왔다.

그 태도는

서류 앞에서도,

사람 앞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잘할 수 있을지

아직은 모른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이용자의 마음을

다치게 할까 봐 걱정하는 사람은

적어도

함부로 다가가지는 않을 거라는 것.

행정에서 배운 조심스러움이

이제는

사람을 대하는 기준이 되기를 바란다.

서두르지 않고,

넘겨짚지 않고,

내가 옳다고 확신하지 않는 태도.

20년 동안

숫자 뒤에 서 있었던 나는

이제

사람 곁으로

한 걸음 옮겨왔다.

빠르지는 않을 것이다.

능숙해 보이지도 않을 것이다.

그래도

다치게 하지 않으려는 마음만은

끝까지

놓지 않고 가보려 한다.

그 마음 하나면

시작은

충분하지 않을까.


작가의 이전글 사회복지행정을  하며 배운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