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은 어느 날 우리의 삶 안으로 들어왔다.
그 전과 이후를 나눌 만큼 분명했지만,
그 시간을 설명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처음에는 지나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곧 나아질 거라고 믿었고
다시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 애썼다.
더 알아보려 했고
더 잘해보려고 했다.
하지만 시간이 길어지면서
나는 조금씩 알게 됐다.
이 시간은 끝을 기다리는 시간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시간이라는 것을.
좋은 날이 있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날도 이어졌고
괜찮다고 느낀 다음 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날도 있었다.
질병은 예고 없이 삶의 속도를 바꾸었다.
당연했던 계획이 미뤄졌고
쉽게 하던 일들이 어려워졌고
하루를 무사히 보내는 일이
하나의 목표가 되었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우리는 많은 것을 다시 배웠다.
기다리는 법,
포기하지 않는 법,
그리고 서두르지 않는 법.
돌봄은 특별한 순간보다
아무 일 없이 지나간 날에 더 많이 있었다.
같이 앉아 있는 시간,
같은 이야기를 다시 듣는 시간,
괜찮다고 말해주는 시간.
그 반복 속에서
나는 버틴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됐다.
질병과 함께 산다는 것은
삶을 멈추는 일이 아니었다.
삶의 기준을 바꾸는 일이었다.
무엇이 중요한지,
무엇은 미뤄도 되는지,
무엇은 끝까지 지켜야 하는지
조금씩 선명해졌다.
예전의 나는 해결하려고 했고
지금의 나는 함께 있으려고 한다.
질병은 많은 것을 바꾸었지만
사람을 보는 방식도 바꾸었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더 오래 듣고
답보다 이해를 먼저 생각한다.
10년이 넘는 시간은
특별한 결론을 주지 않았다.
대신 하나의 태도를 남겼다.
질병과 함께 산 시간은
나를 조용히 바꾸었다.
그리고 그 변화가
지금 내가 사람 곁으로 가는 이유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