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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작가 Sep 05. 2020

화(火)의 본질

<화에 대하여> / 세네카

‘세네카는 초기 스토아 철학의 노선을 계승하면서 후기 스토아 철학파를 상징하는 인물이 되는데, 다른 철학에 비해 스토아 철학은 마음, 행복, 돈, 화, 명예부터 노년, 죽음, 인생에 이르기까지 현실적이고 일상적인 문제에 대해 질문하고 답을 찾으려 했다. 그래서 논리학이나 자연보다 윤리에 훨씬 더 강한 관심을 보였으며 평정심을 강조했다. 세네카는 인간이 세속에 물들면서도 인간다운 까닭은 올바른 이성 때문이라는 것과 유일의 선인 덕을 목적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스토아주의를 역설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전투와 전쟁에서조차 화가 유리한 수단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화는 조급함을 부르고, 적을 위험에 빠뜨리고자 하는 욕망은 경솔함을 불러들여 오히려 우리 자신을 위험에 빠뜨린다. 가장 믿을 만한 지혜는 상황을 오랫동안 신중하게 살피고, 끝까지 자제심을 발휘하고, 정해진 목표를 향해 천천히 나아가는 것이다.’

‘내 말을 귀담아 들어라. 숭고한 정신과 오만함 사이에는 엄청난 거리가 있다. 화는 아름다움이나 훌륭함 따위를 목적으로 삼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허약함과 과민함을 알고 있는 사람이 화를 통해 자신의 무기력함과 지친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마치 병들어 염증으로 뒤덮인 몸이 누가 살짝 스치기만 해도 신음소리를 내는 것과 마찬가지다.’

‘… 화는 혼자서는 결코 어떤 모험도 강행하지 않으며 오직 마음의 동의가 있어야만 야기된다는 것이 우리(스토아학파)의 견해다. 부당한 일을 당했다고 생각하는 것, 그것에 대한 보복을 열망하는 것, 그리고 사람이 위해를 입어서는 안 된다는 것과 남에게 해를 끼친 자는 보복을 당해야 한다는 두 가지 명제를 결합시키는 것. 이 중에 그 어떤 것도 우리의 의지와 무관하게 단지 충동에 의해 일어날 수는 없다.’

‘화는 단지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공세적인> 것이어야 한다. 그것은 일종의 적극적인 추구이기 때문이다. 이성의 동의 없이는 어떤 추구도 일어나지 않으며, 이성이 의식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복수나 징벌을 추구할 수는 없다. … 이성을 가뿐히 뛰어넘어 홱 낚아채서는 마구잡이로 휩쓸고 가는 것이 바로 화다.’

‘게다가 길들여지지 않는 포악함으로 인해 자유롭게 사는 그 모든 민족들은 마치 사자나 늑대처럼 노예로 굴종시킬 수도 없지만 또한 지배자가 될 수도 없다. 왜냐하면 그들이 가진 힘은 인간의 본성에서 나오는 힘이 아니라 거칠고 다루기 힘든 자연에서 나오는 힘이기 때문이다. 남의 지배를 받을 수 없는 자는 남을 지배할 수도 없다.
 온화한 기후를 가진 나라들이 대부분 제국을 영위하고, 북부의 혹한에 익숙해진 자들은 어떤 시인이 말하듯 “그들의 기후만큼이나 길들여지지 않는 야만의 성품을 갖고 있다.”’

‘따라서, 우리를 화나게 만드는 것은 무지와 오만함이다. 악인이 악한 행동을 하는 것이 어떻게 이상한 일인가? … 우리는 모든 일을 고려할 수 있어야 하고 매사에 마음을 놓지 않고 경계해야 한다.’

‘아무도 자신을 화로부터 안전하다고 여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화는 천성이 부드럽고 온화한 사람에게조차 야만적인 폭력을 끄집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 복수를 한다는 것은 고통을 인정하는 것이다. 위대한 정신은 악행에 고개 숙이지 않는다. 너에게 부당한 대우를 한 사람이 너보다 강할 수도 있고 약할 수도 있다. 만일 그가 너보다 약하다면 그를 한시름 놓게 하라. 만일 그가 너보다 강하다면 너 자신이 한시름 놓아라.’

‘… 당당한 사람에게 실패는 화를 가져오고, 무기력하고 유약한 사람에게는 슬픔을 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맡은 일은 너무 작아도 너무 무모해도 너무 다루기 힘들어도 안 되며, 우리의 희망은 너무 멀리 잡아서는 안 된다. 우리가 그런 일을 해냈다는 것이 두고두고 스스로도 놀라울 정도의 일에는-설사 한 번쯤 성공을 했다고 하더라도-가능하면 덤비지 않는 것이 좋다.’

‘어린아이는 나이 때문에 용서되어야 하고, 여성은 여성이어서 용서되어야 하며, 낯선 이는 그가 자유인이어서, 너의 식솔은 너와 가까운 사람이어서 용서해주어야 한다. 잘못을 저지른 것이 이번이 처음이다. 그렇다면 그가 네 마음에 들었던 세월을 생각하라. 저 친구는 전에도 몇 번이나 잘못을 했었다. 오래 참아왔는데 더는 못 참겠는가? 그는 친구다. 알고 그런 것이 아닐 것이다. 그는 적이다. 그에게서 뭘 기대하는가!’

‘우리는 어떤 일을 할 능력이 없는 것과 할 생각이 없는 것을 구분해야 한다. 먼저 화부터 내지 말고 가만히 판단을 해보면 많은 이들이 너의 화로부터 놓여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우리는 최초에 마음이 시키는 대로 버럭 화를 냈다가 그럴만한 이유도 없는데 공연히 화를 낸 걸로 보이지 않으려고 계속 밀고 나간다. 무엇보다 공정하지 못한 것은 우리의 화가 타당하지 않다는 사실 때문에 우리가 더 고집스러워지는 것이다. 우리는 마치 심각하게 화가 난 것이 그 화의 정당성을 입증하는 것인 양, 그 화를 붙잡고 자꾸만 더 크게 키운다.’






책을 통해 누군가의 사색을 엿볼 때마다 생각하게 된다.

내 마음의 근본을 살피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덕분에 나 그리고 우리는 각자 사색의 길을 파기도 하니

‘그들’에게 무척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자극에 시간을 빼서 생각을 한다 한들

낯 부끄럽고 부정하고 싶은 마음을 뛰어넘는 데까지 또 한참이라

한숨부터 나오니 말이다.

아무튼 나는 ‘화란 이런 것이다’라는 작가의 정의보다 

그가 얼마나 다각도로 인간 본연의 모습을 탐구했을지 상상하게 만드는 서술들에

더욱 대단, 아니 위대하다고 느꼈다.


더불어 선인들의 지혜란 이런 것이구나, 라는 뻔한 감상을

뻔하다는 마음 없이 묵직하게 뱉어내게 만든다.


내 화는 어디에서 시작된 것인지 생각하다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고 원점으로 돌아가기 일쑤였던,

혹은 다시 헤집고 싶지 않은 마음에 돌아보지 않았던 마음을 들여다보자는 도전을 준 것만으로도

고마운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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