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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작가 Sep 12. 2020

결국 혼자라지만, 결국 함께인 삶

<혼자가 혼자에게> / 이병률

‘나는 말해주고 싶지 않았다. 우리는 언제든 혼자일 수 있으며 혼자더라도 당당할 수 있으니 혼자인 사람에 대해 함부로 말해선 안된다는 사실을. 우리가 가끔 혼자이고 싶은 것은, 우리에게 분명 어딘가 도달할 점이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는 것을. 내 밑바닥의 어쭙잖은 목소리를 스스로 듣게 된다면 스스로를 객관화할 수 있다는 것을.

 그래도 언젠가는 말해주겠다. 우리가 어떻게 혼자일 수 있는가는, 의존적으로 살지 않겠다는 선언으로부터 가능하다고. 도대체 얼마나 혼자 있어 보질 않았으면 혼자 있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인지, 그 또한 보통의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눈물이라는 게 마음이랑 어쩌면 이 정도로 똑같이 닮았나 싶다. 마음의 안과 바깥이 스스로 자정 역할을 다하지 못할 때 우리는 뿌리까지 힘들 수밖에 없다. 마음이 얼마나 건강한지, 마음이 얼마나 풍부한지는 사랑을 해본 사람만 확인 가능하다. 사랑을 겪은 사람이, 그리하여 사랑에 질문을 해본 사람이 마음을 사용할 줄 알 것이며, 마음을 쓸 줄 안다는 것은 단단하고 유연해진 마음 위로 내려 쌓이는 잡다한 원인들을 흡수하거나 증발시킬 수 있다는 말이다. 마치 눈물처럼.’

‘나는 행복을 바라지 않는다. 행복이라는 말은, 참, 사람을 그 말의 노예로 만든다. 대신 내 몸안에서 핵분열하는 행복의 세포만 믿기로 한다. 그러니 굳이 행복을 위해 애써 하게 되는 일련의 피로한 행위들도 다 그만두자고 주문을 건다.’


‘내 삶이 한 두가지 단어로 규정되지 않기를 바란다. 내가 믿고 따르며 숨 쉬는 공기 또한 나에게 한 가지 색깔을 강요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래서 바람이 통하는 상태에 나를 놓아두려 한다. 당신도 그러하길 바란다.’


이전에 그의 책은 뭐랄까, 무작정 따뜻한 느낌이었다.

그런데 몇 년 만에 읽은 그의 이번 수필집에서는 단단한 벽 같은 게 느껴졌다.

벽이라고 한 이유는 읽다가 몇 번 턱, 걸리는 느낌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제목이 <혼자가 혼자에게>라는 걸 내가 너무 가볍게 넘기고 고른 탓이겠지 싶었다.

혼자가 아닌 내가 쉽게 동의할 수 없는 문구들이 몇 있었다.

나이가 들수록 수많은 곧고 단단한 가치관들,

즉 ‘나’들을 만나게 되는 것 같다.

그 사이에서 나를 지키고 사는 것과

‘나’들을 존중하고 사는 발란스가 쉽지 않은 일이라는 깨달음.

마음의 유연함을 지키고 사는 건 퍽 어렵다.

내가 동의되지 않는다 하여 곧장 불편해져버리고 마는 것은 

내 속에 그 유연함이 조금 사라졌기 때문 아닐까 하는 생각과,

혼자가 아니면서도 혼자의 시간을 지켜내는 싸움의 필요를 알고 지켜내는 사람들의 지난함에 대한 생각을 함께 해보았다.


혼자이든 혼자가 아니든

나와 다른 입장에 선 이를 막연히 ‘비난’ 혹은 ‘판단’ 하지 말고,

그 혹은 내 소중한 누군가의 진짜 의중을 파악하기 위해 마음을 써보자는 다짐을 했다.


나이가 잘 들어간다는 건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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