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 Francisco
약 7시간째, 샌프란시스코를 향하는 비행기 안.
내가 나이가 들어서인지, 여행의 연식이 제법 쌓여서인지 모르겠지만 여행을 떠날 때 전만큼 기대되지 않고, 떠난다는 사실을 떠올리는 것 만으로 느껴지던 설렘의 강도가 떨어졌다는 걸 부정할 수 없다. 그래서 문득, 불편한 잠을 자다 깨 눈이 말똥말똥해짐과 동시에 슬금슬금 피어오르는 설렘이 반가워 기록했다. 나는 여행자로서 여전히 행복하다는 걸 확인한 듯해서 말이다.
마지막까지 일에 긴장을 늦추지 못한 남편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인천공항에 도착해서 ‘이제 좀 실감이 나네’하는 말과 표정 속에는, 몇 년 전 같은 말을 뱉어낼 때 얼굴로 퍼지던 생생한 흥분이 보이지 않았다. 남편의 속은 어떨는지 모르지만, 일 년에 한 번 있는 우리의 여행을 흥겹게 하고자 몇 번 끼워 넣던 내 추임새에 마치 남편도 내 마음을 다 안다는 듯 반응을 끄집어내는 것 같았다. 5년 전 신혼여행으로 떠난 뉴욕 45번가쯤에서, 발을 튕겨내듯 걸으며 5년 뒤에 다시 미국에 여행 오자고 약속했을 때 우리의 모습을 생각하니 마치 20년쯤 노숙해져 버린 것만 같다. 최근 우리 부부가 밥먹듯이 말하듯, 삼십 대가 그리 무겁고 어려워서 그런 거겠지. 생각해보니 공항에서 들은 오십 대 이상의 어른들 수다 소리에 묻은 감정은 우리의 그것보다 훨씬 가볍고 나른하지 않게 들렸다. 지금 우리가 내려놓지도, 거머쥐지도 못한 무언가를 정리해낸 덕이리라.
이제는 안다. 20여 일의 여행을 하고 돌아와 내 삶과 삶을 대하는 나의 태도가 기적적으로 바뀔 수 없다는 것을. 하지만 짧지 않은 시간 다녀오는 여행이니 나는 한 번 기대를 걸어 본다. 몇 달간 내 삶을 흔들던 자잘하고 큰 감정의 파도를, 몸의 고단함을 조금이라도 잔잔하게 만들어줄 손길이 내게 있기를. 어찌 됐든 내가 좋아 죽는 여행길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