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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Road Movie 0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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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작가 Nov 15. 2022

다시 여행자의 거리로

2008. 방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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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녁 일곱 시 반, 나는 치앙마이에서 방콕으로 향하는 야간 버스를 탔다. 널럴했던 지난번과 달리 이번엔 자리가 꽉 차서 나는 2층 맨 앞 창가에 하나 남은 자리에 겨우 앉았다. 그런데 반갑게도 내 옆에 쭉 앉은 승객들 전부 한국에서 온 배낭여행객들이었다. 물론 다들 따로 온 사람들이었고, 그중 29살 언니와 24살 청년과 나는 거의 네다섯 시간 동안 쉼 없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각자의 여행 이야기로 시작해서 사적인 이야기까지, 비슷한 점이 많고 생각하는 것도 비슷해서 이야기가 술술 풀렸다. 처음 보는 사람과 속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것은 여행의 또 다른 묘미다. 직장이나 학교에서 만난 아무개가 아닌 길 위에 선 또 다른 여행객으로서 서로를 만나기 때문에, 혹은 여행을 사랑한다는 중요한 공통점 때문에 서로가 무작정 편한 것일지 모르겠다. 


 중간에 버스가 고장 나는 바람에 정말이지 코끼리가 걸어가는 속도로 달리던 버스는, 용케 예정된 시간에 맞추어 방콕에 도착했다. 애초에 다른 목적지를 두고 왔다는 것을 알기에 아쉽지만 몇 시간 새 정이든 여행객들과는 서로의 안전을 기원하며 헤어졌다. 나는 곧장 처음 방콕에 온 날부터 묵었던 게스트 하우스에 가서 방이 있는지부터 확인했다. 안타깝지만 내가 원했던 가장 저렴한 팬 룸은 이미 다 찼다는 말에 나는 아쉬운 대로 남은 방에서라도 묵기로 했다. 어쩌다 보니 이번에도 에어컨에 화장실까지 딸린 방에서 호화스러운 밤을 보내게 됐다.


 누울 자리가 생기자 엄청난 피로가 밀려들었다. 이 상태로 어딜 나가는 건 무리일 듯싶어 나는 짐을 대충 풀어 두고 잠시 눈을 붙였다. 그렇게 서너 시간쯤 자고 일어나니 이번에는 배가 고파 가장 가까운 어묵 국숫집에 갔고, 감칠맛이 도는 매콤한 어묵국수가 생각보다 맛있어서 나는 평소에 먹지도 않는 국물까지 깨끗이 비웠다. 거기에 디저트로 망고주스까지 마시니 그제야 지난밤의 피로가 말끔히 풀린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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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요일이었던 다음 날, 나는 주말에만 여는 짜뚜짝 시장에 갔다. 아직 안내양이 돈을 받고 짤랑짤랑 소리가 나는 나무통에서 잔돈을 거슬러 주는 버스가 신기해 들떴던 것도 잠시, 엄청난 주말 오후 방콕의 트래픽에 갇혀 나는 한 시간 남짓한 시간 내내 답답함을 견뎌야 했다. 


 드디어 도착한 시장은 이미 안팎으로 사람들이 가득 차 있었다. 태국 전역에 있는 물건과 음식 등을 모두 판다더니, 그야말로 없는 게 없는 시장은 복잡할 수밖에 없어 보였다. 볼 것 천지인 시장 구경에 신이 나 정신없이 구경하다 보니 어느새 5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을 정도였다. 없는 예산이었지만 가까운 몇몇 사람들을 위해 선물을 고르는데, 유일하게 스스로에게 돈 쓰는 재미를 허락한 시장에서 기분이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아침 일찍부터 여는 시장은 여섯 시쯤 되니 파장 분위기로 금세 바뀌었다. 대신 음식점들은 활기차졌는데, 카오산 골목 시장 음식값에 익숙해진 내게 이 거대한 시장의 밥값은 너무 비싸게 느껴져, 나는 고픈 배를 부여잡고 카오산으로 넘어왔다. 그리고 역시나 카오산에 오길 잘했다는 마음. 드디어 발견한 로띠 가격이 짜뚜짝의 그것보다 훨씬 쌌기 때문이다. 계란을 풀어 넣은 밀가루 반죽을 기름 넉넉히 두른 팬에 구운 뒤 바나나 등으로 속을 채워 먹기 좋게 잘라주는 로띠는, 달콤하고 부드러워 정말이지 순식간에 내 뱃속에 들어가 버렸다. 태국 음식은 워낙 세계인들로부터 사랑받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어쩌면 이렇게 다 맛이 있는지. 위장이 10개쯤 되었으면 좋겠다는 평소의 바람이, 태국에 오니 10배쯤 커진 것 같다. 


 저녁 8시가 되어가는 카오산은 파장 분위기였던 시장과 달리 이제 시작이라는 듯 점점 흥겨운 기운이 오르고 있었다. 내일이 월요일이라는 게 중요하지 않은 거리 위 수많은 여행자들은 그저 즐거워만 보였다. 늘 같은 루틴의 일상을 살아낸 이들이 여행객 옷을 입었을 때 누릴 수 있는 그 자유함이 나는 좋았다. 그 분위기 속에 내가 부릴 수 있는 사치는 몇 가지 주전부리를 더 먹는 것이었으므로, 나는 스스로에게 인심 쓰듯 그렇게 하고  태국에서 여느 날들처럼 싱글벙글 웃으며 숙소로 돌아왔다. 씻고 누워 생각해 보니 이 날로 태국에서 지낸 날이 지낼 날보다 길어졌다. 이틀 만에 잠다운 잠을 청하는 이 밤, 쏟아지는 졸음에도 아쉬운 마음은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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