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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작가 May 30. 2024

돌보는 모든 이들에게 박수를

<돌봄과 작업> / 정서경 외 10명 지음

하지만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창조적인 작업은 정지되고 고독한 시간 속에서가 아니라 흘러가는 분주한 일상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말이다. 진짜 나다운 것은 너를 보살피고 너에게 침범당하며 너와 뒤섞이는 와중에 만들어진다. 진짜 창조물은 머리만이 아니라 손발과 팔다리로, 마음과 오장육부를 거쳐 만들어진다.

...이것을 성장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인간의 성장은 날개를 펴는 것처럼 자유로워지거나 꽃이 피듯 눈부신 방식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어떤 일을 통과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다른 곳에 도달하게 되는 일인 것 같다. 자고 일어나면 알지 못하는 사이에 키가 자라는 것처럼 어떤 길을 지나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걸어가는 과정 속에서 성장이 일어나는 것이다.

...부모의 역할은 상처를 주지 않는 것일 수도, 아이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일 수도, 아이를 성공으로 이끄는 것일 수도 없음을 새기는 것. 가족은 그저 서로 연민하고 서로 기댈 수 있는 존재가 되려 하는 것임을.

...이렇게 우왕좌왕하던 내가 마주 앉은 엄마들로부터 배운 것은 각양각색의 아이들을 키워내는 과정에 필요한 이상적인 지식이나 모성은 하나일 수 없으며, 또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지식과 감정, 책임 사이의 모순과 긴장도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소위 독박육아의 고통이란 신체적 차원의 고됨뿐 아니라 이 모든 갈등과 어려움을 혼자 감내해야 한다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닐까. 아이를 돌보는 일상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이 쌓이고 아이라는 낯선 존재를 어떻게 돌봐야 할지 함께 고민하는 사람이 늘어날 때, 양육의 무게는 조금 가벼워지고 돌봄의 분배는 조금 더 정의로워질 것이다.

식물을 키우든, 반려동물과 함께 살든, 아이를 양육하든 모든 일은 돌봄의 영역 안에 있다. 오로지 내 입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닌, 타인을 위해 밥을 짓고 빨래를 하고 청소를 하는 사람은 세상을 보는 시선이 다를 수밖에 없다. 염려와 책임 속에 살아가는 만큼 성숙할 기회는 배가 됐다.

'가끔 허세가 정말 심한 사람들을 보잖아요? 잘 살펴보면 원인은 집안일에 있어요. 전혀 안 하는 거죠. 반면에 이름난 작가인데 조금도 거만하지 않은 분들이 계세요. 그분들의 생활을 살펴보면 요리도 하고 설거지도 하고 집안일을 잘하세요. 집안일은 일단 타인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 하잖아요. 매일매일 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고요. 자기가 자기 존재를 떠받드는 훈련을 한 사람은 결코 거만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정아은)'



작년 연말, 단골 카페에서 친해진 한 언니에게 이 책을 선물 받았다.

아마도 십수 년 꿈만 꾸고 산 듯하다며 회의감과 자괴감에 빠져 있던 날들이었을 거다.


화가로서 꽤 멋진 경력을 가진 언니는 임신과 동시에 모든 걸 내려놓고 육아에만 전념하고 사는데,

말이 많지 않은 언니는 이렇듯 책선물로 내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하거나

대화 중 내가 스스로 너무 낮추는 태도를 보인다 싶을 때면 짧게 이런 말로 나를 세워주곤 한다.


어떤 글이든 꾸준히 쓰고 매주 유튜브에 영상을 편집해 올리는 일은

마치 소책자 하나를 매주 만들어내는 일 아니냐고.

아이를 돌보며 꾸준히 그걸 하는 것 자체가 이 책의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작업'을 해내며 사는 거라는 식의 말을 말이다.



나도 모르게 자주 쓰는 말마따나

'내 몸을 갈아 넣어'야 가능한 양육과 돌봄이라는 일이 주가 된 삶을 12년쯤 살다 보니

진하게 깨닫는 몇 가지가 있다.


아이를 낳아보지 않았다면

나는 세상 돌아가는 일의 반의 반의 반도 이해하지 못했으리라는 것.


아이를 낳지 않은 사람을 낮추어 보려는 게 아니다.

미완성의 인간이 한 인생의 시작부터 책임을 지고 산다는 일 자체가 그렇다는 거다.


정말이지 답도 없고

단 한 권의 완벽한 지침서도 없는 일.


그러므로 나 포함 모든 양육자들을 인정하고 위로해 주는 치가 되고 싶은데

아이러니하게도 나 자신에게 그 인정과 위로를 주는 데 인색한 세월이 길었다.


아마도 어떤 '욕구'들 때문이었겠지.

내가 인정할 수 있을만한 성과를 내보고 싶은 욕구 같은 것.


고맙게도 아이가 어느 정도 커서 치열하지는 않아도 될 정도의 삶에 이르니

드디어 나를 좀 인정하게 되었다.

나 참 열심히 살았다고.


그래서 나와 모양은 다르지만 치열하게 '돌봄과 작업'을 이어온 엄마들의 이야기에 눈물이 나기보다

일면식도 없는 그들이 있어 든든하다는 묘한 감정이 인다.

또한 이렇듯 빛나는 이들과 나도 같은 '엄마'구나 라는 뿌듯함까지.


아직 돌봄과 양육에 대한 사회 구조적 한계를 생각하면 답답하지만

이런 생생한 현장들과 그 현장들에서 쏟아낸 기록들이 쌓이고 쌓이면 나아지리라 믿는다.


그런 면에서 읽게 되어 고마운 책.

세상에 책으로 나와줘서 고마운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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