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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작가 May 23.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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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일요일들> / 은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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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예술이 사랑에 대해 말해왔지요.
그렇게나 많은데, 나도 거기 한 개를 보태면서 드는 생각.
문학이란 인간과 세상을 보는 관점을 보태주는 것이고
인간은 복잡한 존재이므로
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관점이란 많을수록 좋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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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안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배신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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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워지고 싶은 것이 삶에 저항하는 것처럼 보인다면 내 잘못이 아니다. 틀을 만든 세상의 잘못이다.
<먼지 속의 나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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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결코 마지막은 아니라는 생각,
그 사이의 조마조마한 긴장이 생에 탄력을 주는 걸까요.

어찌하여 삶은 시작되는 순간부터 소멸해가는가, 라는
<두이노의 비가>의 한 구절이 떠오르는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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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가 여전히 지식인이나 스승이어야 한다면 나는 소설을 쓰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나 역시 어느 책의 서문에 쓴 적이 있어요.
연재를 하면서 달라진 점이 많지만요.
무엇보다 우리가 비슷한 감각으로 비슷한 문제를 고민하는 동시대인이라는 느낌,
그것이 나를 쓰게 만든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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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토록 하고 싶던 일을 결국 참아냈을 때, 기분이 괜찮다.
하지만 했을 때의 기분만 할까!
아시는지.
좋다의 반대말은 나쁘다가 아니라 괜찮다, 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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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 이방인이라는 점에서, 여행자는 대부분 약자이다.
약해졌기 때문일까. 사랑하는 것보다 사랑받는 감정과 조건에 더욱 예민해진다.
낯선 도시에서의 새벽 꿈, 한때 나를 사랑해주었던 사람들이 찾아오기도 한다.
꿈에서 깨어 침대에 누운 채 새벽이 오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생각한다.
여행에서 가장 좋은 건 닥쳐온 의무와, 그리고 일상적 절차에서조차 벗어난 '완벽하게 혼자 있는 시간'이라고.
그 시간에만 가질 수 있는 순진하고 온전한 감정과
그 감정을 보자기처럼 고스란히 감싸서 보존할 수 있는 고적함, 그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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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끝내 여행이 남기는 것, 작별. 거리를 두기 때문일까요, 나를 묶어두는 것으로부터 자유롭게 생각하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나 자신을 낯선 곳에 혼자 떨어뜨려놓고 속마음을 들여다보기 때문일까요.
혼란스럽던 문제들이 불현듯 명료해지는 순간, 여행에는 그게 있어요.
돌아오면 역시 또 그 사람으로 살겠지만 나, 떠나기 전과 100퍼센트 똑같은 사람은 아니에요.

여행의 시간은 흘러가버리지 않고 내 몸 안에 새겨집니다.
여행을 하고 있을 때는 그것을 수행하느라 긴장되고 바쁘잖아요.
그런 점에서 어쩌면 여행의 여정이란 돌아온 다음부터, 내 마음속의 반추로부터 시작되는 게 아닐까요.




털털해 보이지만 예민하고,
자유로워 보이지만 틀이 많은 사람.

그런 사람이 자신을 드러내는 첫 산문집을 썼다면
그 결심이 시작된 것만으로도 변화가 컸을 게다.
산문집은 그 변화 속에 자유로워진 마음이 고스란히 담겼다. 가식 없고 편해서 좋다.
일면식도 없는데 오래 본 친구 같을 정도다.

그리고 그녀 스스로도 알고 여러 번 말했듯 그녀의 ‘생각’이 다소 산만한데
그 속에서 몇몇 말들은
산만함 자체로 소름 끼치게 공감되었다.

여행을 앞두고 있는 내가 기대하는 시간을 그녀가 정리해둔 듯해서
지고 있던 짐을 하나 덜어 낸 기분이다.
그녀의 말처럼 '순진하고 온전한 감정을 마주'하러 가자.
'고적함'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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