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작가 놀이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작가 May 30. 2019

세계명작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 레프 톨스토이

그런데 인간은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에서, 이렇게 별이 총총한 가없는 하늘 아래 꼭 다투며 살아야 하는 걸까? 이 멋진 자연에서 마음속에 원한과 복수심, 또 자기와 비슷한 사람들을 절멸시키려는 욕심을 어떻게 품을 수 있는 걸까?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그 어떤 악한 것도 자연, 아름다움과 선의 가장 직접적인 표현인 자연과 만나면 사라져 버려야 할 것만 같은데.

<습격> 중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구경하러 온 것인가 하는 생각에 수치스러워하지 말고 앞으로 걸어 나가라. 당당하게 그들에게 다가가 말을 걸라. 불행에 빠진 사람들은 인간적인 연민을 담은 얼굴을 보는 걸 좋아하고 자신의 고통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좋아하며 사랑과 동정의 말을 듣기를 좋아한다. 그러니 침대들 사이를 걸어가 덜 차갑고 덜 고통받는 얼굴을 찾아내 그에게 다가가 말을 거는 용기를 내라.

<세바스또뽈 이야기> 중에서

...사람들은 행동이 아닌 말에 의거해 살아간다. 그들에게는 뭔가를 하느냐, 하지 않느냐보다는 다양한 사물에 대해 그들 사이에 약속된 말을 하는지의 여부가 더 중요하다. 그들 사이에서 아주 중요하게 간주되는 그런 말은 이런 단어들이다. <나의>, <나의 것>. 그들은 이 말을 실로 다양한 사물과 존재에 사용한다. 심지어는 땅과 사람, 그리고 말에 대해서도 쓴다. 하나의 사물에 대해서 그들은 단 한 사람만이 <나의>라는 말을 쓰기로 약속한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 약속된 규칙에 따라 가장 많은 숫자의 물건에 <나의>라는 말을 쓰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여겨진다.

...이제 나는 확신하건대, 바로 이 점이 사람과 우리 사이의 본질적인 차이다. 그리고 사람과 비교되는 우리의 다른 특성을 얘기할 필요도 없이, 바로 그 차이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생물 피라미드에서 사람보다 높은 곳에 서 있다고 단언할 수 있다. 사람들이 하는 활동이란, 적어도 내가 경험한 사람들의 경우에 보면, 말에 지배된다. 하지만 우리의 활동은 행동에 의한 것이다. 나를 <내 말>이라고 부를 수 있는 바로 그 권리를 마구간 관리인은 얻었던바, 그래서 마부를 매질했던 것이다.

<홀스또메르> 중에서

이처럼 톨스토이는 죽음을 다루며 역설적으로 삶을 가리키고, 전쟁과 폭력을 그리는 가운데 거기 덧씌워진 허상을 걷어내며, 쉽게 읽히는 민화풍의 이야기를 통해서는 독자에게 가르침을 준다. 톨스토이가 지닌 예술가와 교사의 두 얼굴을 한데 맞붙여 보면, 사뭇 다른 외피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은 그 둘을 관통하며 흐르는 거장의 정신이 어렴풋이 떠오르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역자 해설> 중에서





언젠가부터 <세계 명작>이라 불리는 책들을 읽지 못한 어린 시절이 아쉽게 느껴졌고,

그래서 생각나는 대로 하나씩 찾아 읽고 있는 요즘이다.

어릴 때 왜 읽지 못했냐면,
내가 이 책을 들어 올리고 첫 페이지를 읽었을 때 느낄 막막함과 답답함을 이겨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요컨대 어렵다는 선입견 때문.

그런데 독서라는 게 참 신기한 건
어떤 작가, 어떤 책이든 그 낯섦을 극복하기까지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거다.

그리고 마침내 그것을 극복하고 나면 놓기 아쉬울 만큼의 친근함을 느낀다.

사실 내 두려움은 적중했고,

톨스토이라는 거장의 필체에 익숙해지는 건 조금 더 오래 걸렸다.

그의 내면 속 분투, 신념과의 치열한 싸움이 이야기 사이사이에서 마치 소리 지르고 있는 듯 해 가슴이 뭐에 얹힌 듯 무거워진 탓이다.

마지막 단편을 읽고 책을 덮으면서 어려운 산의 종주를 해낸 듯했던 건,
아마도 독자로서 감히
그가 삶이라는 길고 광활한 여정 곳곳에서 느꼈을 고단함과 희열을 몇 숨쯤 함께 느낀 것 때문이었을 거다.

그럼에도 내가 감히 거장의 글에서
어렵고 이해되지 않는다는 절망감이 아니라
같은 인간으로서의 고뇌와 다짐을 느낄 수 있었기에
멋진 시간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공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