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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작가 Jun 28. 2019

On the road

<안녕 다정한 사람> / 이병률 외

‘여행이란 멀어지기 위해 가는 것이다. 그리하여 돌아올 거리를 만드는 일이다. 멀어진 거리만큼 되돌아오는 일에서 나는 탄성을 얻는다. 그 탄성은 날이 갈수록 딱딱해지는 나라는 존재를 조금 유연하게 만들어준다. 함부로 혹은 지속적으로 잡아당겨지더라도 조금쯤은 다시 나로 되돌아갈 수 있도록.’

‘...그랜드캐니언이나 이구아수 폭포, 안나푸르나 봉우리 같은 엄청난 규모의 자연 앞에서 나는 매번 공포를 느꼈다. 그러나 돌아오면 그것이 내 속의 어떤 공간을 넓혔다는 느낌을 얻곤 했다. 규모의 체험이 내 삶의 내부를 넓혀, 비좁은 삶 속에서 팔을 벌릴 만큼의 공간을 마련해준다고나 할까. 허무를 보아버린 사람이 삶에 담담해지는 것처럼 자연의 거대한 규모는 사람의 마음속에 묘한 무를 마련하는 것 같다. 그것은 도달해야 하는 꼭대기나 뛰어넘어야 하는 벽 너머에 있는, 기대어서 죽음을 기다릴 수 있는 평화로운 고독의 순간 같은 것이다.’

‘낯선 것은 매혹적이다. 그러나 낯섦을 느끼는 건 익숙함에 의해서이다. 그래서 낯선 것 가운데에 들어가면 간혹 내가 더 또렷이 보인다. 내 삶의 틀 속에서는 자연스러웠던 것들의 더러움과 하찮음도 보게 되고, 무심했던 것들에 대한 아름다움도 깨친다. 아득히 잊고 있었던 오래전 일이 기억나기도 한다. 나라고 알고 있는 사람과 다른 나를 만나는 순간도 있다. 낯선 것을 받아들이는 나의 방식 안에서, 내 속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던 뜻밖의 나와 맞닥뜨리는 것이다. 나는 여행에서 그런 순간들을 가장 좋아한다. 내가 그렸던 이방의 세계가 멋지게 펼쳐지는 것보다,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순간의 저녁 바람이 불현듯 옷 속을 파고드는 것.’

은희경, 호주 멜버른

‘내게 있어서 이미지란 있는 그대로 대상을 사랑하기다. 있는 그대로 사랑할 뿐이다. 가끔은 다가가기도 하고, 만지기도 하고, 끌어안기도 한다. 조급증 때문이다. 그럴수록 대상은 모습을 감추거나 거리를 둔다. 그럴 때면 너무 원망스러워 대상에서 등을 돌리거나 대상을 향해 소리치기도 한다. 그러나 소용없고 부질없는 짓임을 경험을 통해 뼛속 깊숙이 알고 있다. 결론은 있는 그대로 사랑하기다. 내게 있어서 이미지란 처음부터 기다리는 대상이다. 그저 사랑하고, 그저 묵묵히 기다리기. 그것이 전부다. 내가 할 수 있는. 그래서 언젠가 대상이 스스로 문을 열고 나를 받아들여줄 때 나는 그때 대상이 갖고 있던 본래의 이미지를 만난다. 하여 이미지는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나는 것이다.’

이명세, 태국 방콕

‘편지는 원하는 것을 담는다. 아마도 거의 모든 것을 담을 수 있을 것이다. 가질 수 없는 것까지도 담을 수 있다는 면에서 한정 없다.’

‘이병률에게 여행은 바람, ‘지금’이라는 애인을 두고 슬쩍 바람피우기.’

이병률, 핀란드 로바니에미

‘나에게 여행은 세계의 내용과 표정을 관찰하는 노동이다. 계절에 실려서 순환하는 풍경들, 노동과 휴식을 반복하면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들, 지나가는 것들의 지나가는 꼴들, 그 느낌과 냄새와 질감을 내 마음속에 저장하는 것이 내 여행의 목적이다.’

김훈, 미크로네시아

‘나는 향기에 특히 민감한데 한순간 어떤 옅은 바람이 한번 불면 그 작은 바람 속에 실리는 내음들과 피부에 닿는 옅은 자극 때문에 한 달 동안 지극정성으로 짠 여행 계획은 산산조각이 날 정도로 의미가 없어진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코와 피부를 스쳐가는 한순간의 느낌들이 그 어떤 여행 준비과정과 어떤 이론과 역사와 관광회사의 정보보다도 감정을 사로잡을 수 있는 힘이 있는 것 같다.’

‘...여행이란, 만약 배움과 탈피와 자유와 쉼이 있는 거라면 난 나의 현재와 절대로 똑같은 상황을 보고 느끼고 싶진 않다. 그래서 멀리 가고 다른 지형을 찾고 다른 경험을 찾는 것이다. ... 앞서 얘기한 것처럼 ‘그곳’에 있을 때 내 머리는 그렇게 쉽게 흔들리고 상상 속으로 쉽게 빠지는 사람처럼 행동해도 결국은 난 언제나 내 중심으로 돌아오게 된다. 바로 그런 것이 내가 내 현실에 만족하고 있다는 증거의 일부인가? 내가 잘났다고 하고 싶진 않다. 하지만 이런 말들이 내가 현실에 만족하고 있다는 증거라면 그런 것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행복한 모습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 보다.’

박칼린, 뉴칼레도니아

‘박찬일에게 여행은 좋은 친구와 여행을 떠나서 맛있는 음식을 나누는 것.’

‘...음식은 단순히 열량이 아니라 인간 역사의 총화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그래서 귄터 그라스가 석기시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그야말로 대하소설인 <넙치>를 쓰면서 시종일관 음식으로-심지어 엄마 젖으로 만드는 치즈도 등장한다-이야기를 끌어갔던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지구의 역사는 제각기 먹느라고 살아가는 인간이 남겨둔 패총의 총합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미치는 것이다.’

박찬일, 규슈

‘장기하에게 여행은 길을 잘못 들어 우연히 타게 된 전철 창밖으로 바라본 풍경이 문득 참을 수 없이 아름다운 것.’

장기하, 영국 런던과 리버풀

‘신경숙에게 여행은 친숙한 나와 낯선 세계가 합해져서 넓어지는 일.’

‘...나는 여전히 낯선 곳에 가면 그곳이 익숙해질 때까지 기다려야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장소를 옮겨 다니며 글을 쓰는 일, 카페 같은 곳에서 글을 쓰는 건 내 세계가 아니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다. 그런 내가 문을 닫고 들어앉으면 완벽히 혼자가 되지만 문만 열고 나서면 세계의 중심과 통하는 도시 뉴욕에 내 책상을 하나 놓아두고 싶어 졌다.
뉴욕은 어느새 나에게 그런 곳이 되어 있었다.’

신경숙, 미국 맨해튼

‘이적에게 여행은 현실을 벗어나 가상현실 속으로 들어가는 것,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낯선 사람들 사이에 앉아 있는 것.’

이적, 캐나다 몬트리올과 퀘벡








몇 달쯤 내리 한 사람이 힘을 들여 쓴 한 권의 책들만 읽다가

무척 오랜만에 여러 작가의 글이 묶인 에세이를 읽었다.

 
내가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작가가 바뀔 때마다 필자의 이야기 뒤로 자꾸 내 생각이 끼어든다.

그래서 다소 산만한 독서를 하게 되었는데, 부정적인 의미의 산만한 독서는 아니었다.

일단 작가들의 직업이 다양하다 보니

무엇으로 먹고사는 사람인가에 따라 세계를 보는 눈, 세계를 담는 마음이 다르다는 게 또렷하게 보여 흥미로웠다.


그리고 수필을 쓰고 싶다면서 이상하게 소설만 찾아 읽는 나는,

역시 소설가들의 필력에 자꾸만 마음이 가 닿았고, 움직였다.


그들에게는 여행도 내면의 세계를 넓히는 수단이라 생각한다는(아마도) 공통점이 있다는 걸 발견했고,

동의가 되어 특히 반가웠다.

작가는 인간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고, 들여다볼 수밖에 없기 때문일까.

여하튼 다행이었던 것은 이 책을 읽고 작가를 꿈꾸는 이로서 기가 꺾였다기보다,

각자 할 일을 하고 살아야 하기도 하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당당하게 사는 이들이 멋지다,라고

본능적인 감동이 일었다는 거다.


그래서 나는 다시 한번,

글 쓰는 치가 되기 위해 큰 능력부터 갖추자는 욕심을 버리자고 생각했다.


하고 싶은 일을 당당하게, 즐겁게 하는 일부터 자연스럽게 되도록 하자고 말이다.

‘마음’을

한 발자국의 움직임으로 내딛는 일이 참 어렵다, 내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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