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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작가 Aug 21. 2019

언젠가 나의 여행도

<여행의 이유> / 김영하

“그렇다면 여행기란 본질적으로 무엇일까? 그것은 여행의 성공이라는 목적을 향해 집을 떠난 주인공이 이런저런 시련을 겪다가 원래 성취하고자 했던 것과 다른 어떤 것을 얻어서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

“기대와는 다른 현실에 실망하고, 대신 생각지도 않던 어떤 것을 얻고, 그로 인해 인생의 행로가 미묘하게 달라지고, 한참의 세월이 지나 오래전에 겪은 멀미의 기억과 파장을 떠올리고, 그러다 문득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알게 되는 것. 생각해보면 나에게 여행은 언제나 그런 것이었다.”

“삶의 안정감이란 낯선 곳에서 거부당하지 않고 받아들여질 때 비로소 찾아온다고 믿는 것. 보통은 한 곳에 정착하며 아는 사람들과 오래 살아가야만 안정감이 생긴다고 믿지만 이 인물은 그렇지가 않아요. 하지만 그는 자신이 이런 프로그램을 갖고 있다는 걸 모르죠. 그냥 여행을 좋아한다고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가 여행에서 정말로 얻고자 하는 것은 바로 삶의 생생한 안정감입니다.”

“...삶이 부과하는 문제가 까다로울수록 나는 여행을 더 갈망했다. 그것은 리셋에 대한 희망이었을 것이다. 이십대, 삼십대에는 일 년짜리 적금을 부어 여행을 다녔다. 때로는 신용카드 할부로 항공권을 구입해서도 나갔다. 그 돈을 모아서 집부터 장만하라던 선배가 있었다. 그 선배의 부모는 강남에만 열 채가 넘는 아파트를 가지고 있었다. 선배는 결혼하면서 그중 하나를 증여받았다. 자기가 번 돈으로 청약저축 한 번 부어보지 않은 사람에게 그런 충고를 들었을 때도 나는 여행을 떠나고 싶었다.

풀리지 않는 삶의 난제들과 맞서기도 해야겠지만, 가끔은 달아나는 것도 필요하다. ... 근대 이후로 인간은 자연과 세계를 개조하고 통제하며 발전해왔고, 그런 정신은 이어받은 자기 계발서들은 우리에게 주변의 문제들은 이러저러한 방법으로 해결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고대의 지혜에 끌린다. 인생의 난제들이 포위하고 위협할 때면 언제나 달아났다. 이제 우리는 칼과 창을 든 적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다른 적, 나의 의지와 기력을 소모시키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적과 대결한다.”

“리베카 솔닛은 걷기와 방랑벽에 대한 에세이에서 고대 그리스의 소피스트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생각으로 먹고사는 사람들은 방랑하지 않을 수 없다고 적고 있다. 철학자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것들, 이를테면 사상은 옥수수 같은 곡물과 달리 안정적인 수확을 기대하기도 어렵고 모두가 좋아하는 것도 아니어서 한 곳에 머물기 어렵다는 것. 인맥이나 터전에 얽매인 직업, 대표적으로는 정치인이나 농민과는 다르다고 말한다.”

“...영감을 얻기 위해서 혹은 글을 쓰기 위해서 여행을 떠나지는 않는다. 여행은 오히려 그것들과 멀어지기 위해 떠나는 것이다. 격렬한 운동으로 다른 어떤 것도 생각할 수 없을 때 마침내 정신에 편안함이 찾아오듯이, 잡념이 사라지는 곳, 모국어가 들리지 않는 땅에서 때로 평화를 느낀다.”

“...무슨 이유에서든지 어딘가로 떠나는 사람은 현재 안에 머물게 된다. ... 후회할 일은 만들지를 말아야 하고, 불안한 미래는 피하는 게 상책이니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미적거리게 된다. 여행은 그런 우리를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로부터 끌어내 현재로 데려다 놓는다. 여행이 끝나면, 우리는 그 경험들 중에서 의미 있는 것들을 생각으로 바꿔 저장한다. 영감을 좇아 여행을 떠난 적은 없지만, 길 위의 날들이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실뱅 테송의 말처럼 여행이 약탈이라면 여행은 일상에서 결핍된 어떤 것을 찾으러 떠나는 것이다. 우리가 늘 주변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뭐하러 그 먼길을 떠나겠는가. 여행지에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되는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여행은 어쩌면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되기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사회적으로 나에게 부여된 정체성이 때로 감옥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많아지면서, 여행은 내가 누구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를 잠시 잊어버리러 떠나는 것이 되어가고 있다.”

“그러니 현명한 여행자의 태도는 키클롭스 이후의 오디세우스처럼 스스로를 낮추고 노바디로 움직이는 것이다. 여행의 신은 대접받기 원하는 자, 고향에서와 같은 지위를 누리고자 하는 자, 남의 것을 함부로 하는 자를 징벌하고, 스스로 낮추는 자, 환대에 감사하는 자를 돌본다. 2800여 년 전에 호메로스는 여행자가 지녀야 할 바람직한 태도를 오디세우스의 변화를 통해 암시했다. 그것은 허영과 자만에 대한 경계, 타자에 대한 존중의 마음일 것이다.”

“...일상으로 돌아올 때가 아니라 여행을 시작할 때 마음이 더 편해지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나와 같은 부류의 인간일 것이다. 이번 생은 떠돌면서 살 운명이라는 것. 귀환의 원점 같은 것은 없다는 것. 이제는 그걸 받아들이기로 한다.”

“여행의 이유를 캐다 보니 삶과 글쓰기, 타자에 대한 생각들로 이어졌다. 여행이 내 인생이었고, 인생이 곧 여행이었다. 우리는 모두 여행자이며, 타인의 신뢰와 환대를 절실히 필요로 한다. 여행에서 뿐 아니라 ‘지금, 여기’의 삶도 많은 이들의 도움 덕분에 굴러간다. 낯선 곳에 도착한 이들을 반기고, 그들이 와 있는 동안 편안하고 즐겁게 지내다 가도록 안내하는 것, 그것이 이 지구에 잠깐 머물다 떠나는 여행자들이 서로에게 해왔으며 앞으로도 계속될 일이다.”










발칸 여행에서
그가 찾은 여행의 이유를 엿보았다.

나와 생각의 많은 부분이 같은 사람 같다.
글쓰기와 여행이 삶의 첫 번째, 두 번째로 많이 한 일이라는 말에서 나는 동질감 비슷한 걸 느꼈다.

여행의 이유는
여행에 대해 쓴 여러 가지 산문들에서 보건대
여행자들이 고민할 수밖에 없는 주제인 것 같다.

나 역시 여행을 왜 하는가라는 질문 앞에 나를 수없이 놓았다.

그리고 나는 코소보에서 함께한 이들과 대화하면서,

올해 초 뒤로 미뤄두었던 그 질문 앞에 쭈뼛대며 다시 섰다.

나에게 여행은 머리나 마음으로 더 이상 다시 묻지 않아도 될 만큼 확신에 찬,

내 삶의 한 부분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무엇을 이루어야 하는가에 관하여는 좀체 온전한 확신이 서지 않는데 지쳤고

사실 여러 상황들에 여력이 없다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결국 여정은 나로 다시 그 앞에 서게 했다.

그래서 나는 특히 여행자는 현실을 산다는 그의 말에 공감한다.


여행은 무엇보다 ‘문제들’에 직면하게 만드는 장이므로.

그 장이 낯설고 넓고 예측 불가할 뿐, 여행은 문제들을 더욱 생생하게 보여준다.

하여 나는 다시 나만의 이유에 대해 고민해보기로 했다.

나도 꼭 한 번은 여행에 대해 쓰고 싶었다던 그처럼

언젠가 나의 이야기를 쓰거나, 나의 여행을 어떤 방식으로든 풀어낼 날이 오겠지.

돌아갈 일상이 이번에는 새로운 여정의 시작처럼 느껴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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