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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작가 Aug 28. 2019

받아들이거나, 받아들여지거나

<할머니는 죽지 않는다> / 공지영 소설집

'...살자리인 줄 알고 도망친 곳이 죽을 자리였고, 죽겠다고 도망친 곳이 때로는 살 자리였다. 그러나 나는 오직 그 사실을 알 뿐, 그것의 법칙은 알지 못했다. 다만 살기 위해 죽을 자리로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죽을 각오로 뛰어들 때만이 그것이 아주 가끔 살 자리가 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에픽테토스에게서 영향받은 안젤름 그륀의 책 <너 자신을 아프게 하지 말라>라는 책의 한 구절은
그 무렵 불현듯 내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

우리는 언제나 자신을 비난하는 심술궂은 사람들을 배심원석에 앉혀놓고 늘 피고석에 앉아
자신의 행위가 무죄라는 변명을 끝없이 늘어놓고 싶은 강박을 가지고 있다.

...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우리에게 일어난 어떤 일이 아니라, 그것에 대해 우리가 가지는 표상이다.'

'"어, 엄마...... 엄마."

언제나 나를 속수무책으로 만드는 이 부름. 언제나 나를 무겁게 하고 나로 하여금 단정히 앉아 글을 쓰게 하는 그 부름.
머릿속으로 오늘따라 며칠 동안 아무도 없는 데서 조용히 글만 써보겠다고 버스를 타고 내려온 결심이 와르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
왜 막내는 맨날 아플까? 짜증도 지나갔다.
...
그러나 오래도록 엄격한 뇌의 통제를 받아온 내 입술은 지금 곧 가겠다고,
큰 병원으로 가 있으라고, 필요하다면 당장 입원 수속을 밟으라고 말하고 있었다.'

'생이 나를 부르면 그것이 공평하든 그렇지 않든, 예, 하고 큰소리로 대답하기로 결심했다.

...

나는 그렇게 겨울을 걸어가고 있다. 어쩌면 그것은 익숙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생의 부름에 대답하고 나서 혹시 오는 봄을 내가 견뎌낼 수 있을까.
언젠가 기습하고야 마는 봄 앞에서 내가 그것을 견뎌낼 수 있을까?
혹시라도 행, 복 같은 게 내게 온다면 내가 그걸 감당할 수 있을까?
아아, 거기에는 도구가 필요할 것이었다.
겨울 길을 갈 때 장비가 필요하듯이, 봄 길, 꽃 길, 낯선 행복 길을 걸어갈 장비가,
월동 장구 말고, 월춘 장구... ...
아마도 내게 그건 쓰기, 읽기, 웃기, 기도하기 아닐까.'

'..이미 엎질러진 것을 우리는 인생이라고 부른다.
...
중요한 것은 과거가 아니고 중요한 것은 미래도 아니며 현재는 더더욱 아닌 것이다.
나는 그저 통째로의 이 삶, 나의 어리석음과 돌이킬 수 없었던 결정들과 원하지 않았으나
내게 주어졌던 이 삶, 그러니 결국은 내 것일 수밖에 없는 온전히 내 책임인 이 삶... ...
찬물에 풍덩 넣어 삶아내는 통돼지고기처럼 다리도 있고 꼬리도 있고 뭉툭한 코도, 다 깎이지 않은 털도 있는 통째로의 이 삶을
나는 받아들이고 싶었다.'

'... 누군가 말하지 않았던가.
우리 삶에서 가장 하기 힘든 일은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하는 일이며
우리 삶의 비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역시 끝없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며 사는 것이라고.'

"어떻게 살았느냐고 당신은 내게 여러 번 물었지요? 죽고 싶지 않았느냐고 당신은 내게 여러 번 물었지요?
아니요, 죽겠다, 하는 생각은 했지만 신기하게도 죽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 말 알아요? 아우슈비츠에서 자살한 사람보다 지금 도쿄에서 자살하는 사람이 훨씬 더 많다는 것.
그런데 어떻게 살았느냐? 희망을 버리니까 살았죠.
아이들이 태어났고 저 아이들을 위해서 살자, 일본에 돌아갈 꿈을 포기하자... ...
아니 희망을 버린 것이 아니라 운명이 내 맘대로 내가 원래 계획했던 대로 돼야 한다는 집착을 버린 거죠... ...
그래서 살 수 있었어요."

'희망이 절망적인 유혹이 되지 않기 위해서 우리가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희망을 버리는 것이라는 것을 나는 그때는 몰랐다.
풍랑을 만난 배가 물결을 헤치고 그저 앞으로 갈 수밖에 없듯이
온몸으로, 온 몸으로 물결을 받아들이는 수밖에는 아무 방법이 없다는 것을 나는 몰랐다.
그리하여 그것을 받아들일 때까지, 그것이 운명이라는 것을 받아들일 때까지,
쓰나미처럼 우리를 덮치는 불행이라는 것이 생의 한 속성이라는 것을 받아들일 때까지, 우리는 늪 같은 운명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그리하여 어떤 순간 정신을 차려보면 과거의 어리석음이 고름처럼 악취를 풍기는 인생의 어떤 해안에 서 있는 것이다.
운명은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인간들 앞으로 너무도 다양한 방식의 불행을 동원해,
잔혹하고도 정확한 조준을 하며 각개 약진해오는 것이다.'

'...제게 글이란 그런 찰나를 잡고 싶은 헛된 몸부림 같은 것,
기척으로만 들려오는 구조대를 향해 절벽 끝으로부터 겨우 뻗은 안쓰러운 손가락 같은 것들입니다.'







대놓고 그녀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이 소설집은 내 가슴을 여러 번 후벼 팠다.

혼자 하는 여행인 데다가 일정 대부분이 내 개인적 관심사인 홍차에 집중되어 있어 비는 시간이 많을 것 같아
나는 스리랑카로 떠나기 전 이 책을 골라갔는데,

나는 이 책을 한 번도 펴 들지 못했더랬다.
책을 펴 들 시간이 없을 정도로 스리랑카와 사람들이 내 시간과 추억을 메운 덕분이었다.

그리고 스리랑카는 내 가슴을 여러 이유로 들었다 놨는데,
다녀오자마자 잡아 든 이 책이 어쩌면 그토록 같은 이유로 그 구석들을 건드렸는지 모른다.

첫 소설 <월춘장구>를 읽던 지하철에서 내가 몇 번 눈물을 참아야 했는지,
마지막 소설 <맨발로 글목을 돌다>에서 몇 번이나 회자된 프리모 레비의 아우슈비츠 경험이
얼마나 스리랑카에서 보았던 눈망울들을 떠오르게 해 가슴을 울렁였는지.

고통과 고독과 독서가 그녀가 글을 쓰게 만드는 힘이라는 말.
그녀 만큼의 고통을 가졌노라고는 결코 단언할 수 없는 연륜을 가진 나이지만,
작년 가을 남편에게 그와 비슷한 결론을 내어 고백했던 것을 생각하니 또 한 번 가슴이 울렁, 한다.

몇몇 고통은 예전보다 작게 느껴져

내 인생에 작은 뒤척임만 주게 되었을 정도인데

내가 단단해진 탓인지도 모르겠으나
종종 나는 감사할 수 있는 삶, 평안한 삶을 감사하다 고백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평안할 때 더 불안하거나,

심지어는 불완전하다고 느낀다.

희망을 포기하고 삶을 통째로 받아들이기로 했다는 그녀의 고백 전에 그녀는 어떤 삶을 감내해야 했을까?
그저 상상인데도, 내가 얻을 수 있는 단서는 소설 속에 쓰인 몇몇 문장들 뿐인데도

나는 소름이 돋는다.

나도 그 지점이 올까?
그녀가 맨발로 글목을 돌았다고 했을 때 느꼈을 순간이,

나의 인생에 말이다.

올해 한 지점은 통과한 기분인데
앞으로 무엇이 삶에 들이닥칠지.

그녀만큼의 연륜에 닿기까지 나는 삶을 '잘' 견뎌낼 수 있을까?

고통과 공감에 박식한 그녀가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고 있듯 내 훗날의 글들이, 삶이 그럴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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