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엔 깨어나고 겨울엔 잠을 자야 하는 구근 식물. 천남성과. 따뜻한 곳에서 재우지 않고 기르다 보면 어느 순간 약해져 죽을 수도 있다고 해. 올해 겨울에 잠들지 않으면 내년 겨울엔 푹 자야 하는 식물인 거지. 습도와 온도에 예민하고, 까다로운 만큼 화려하고 아름다워. 시선을 잔뜩 빼앗는 너른 이파리들. 흐르는 줄기의 선.
작은 잎의 스트로베리스타를 며칠 전 하나 데려왔고, 오늘은 구근 상태의 문라이트가 작업실로 도착했어. 구근이 싹을 올릴 때까지, 온도 30도에 습도 90프로를 유지하라고 하는데 지금 계절에 30도 되는 곳이 어딨어. 하는 수 없이 방으로 데려왔어.
혹시라도 씌워둔 비닐을 콱 깨물고 화분을 넘어트릴까 싶어 고양이들은 거실로 내보냈어. 그러니 지금 내 방에 눈을 뜰락 말락 한 유기체는 나와, 칼라디움 문라이트뿐야.
아득할 정도로 아름다운 칼라디움들을 모니터 너머로 구경하고 있다 보면, 원치 않아도 너를 떠올리게 돼. 충분히 쉬지 않으면 자주 어지러워하는 너를. 내 말을 듣는 듯 마는 듯 얼굴이 하얗게 질려 눈물을 뚝뚝 흘리는 너를. 조금이라도 과습하면 금세 물러져 망가져 버리는 구근처럼, 너를 괴롭히는 일들에 초연하지 못하고 연약한 너를.
칼라디움 구근은 펄라이트를 잔뜩 섞어 가볍고 물이 잘 빠지는 피트모스에 얕게 숨겨뒀어.
세상천지 너를 옥죄고 괴롭히는 일들로부터 너를 오래오래 지켜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디에도 보내지 않을래. 내 곁에서 현실에 두 발 붙이고 살아낼 수 있도록 작은 온실처럼 너를 보듬을게. 네가 이파리를 올려내다 지쳐, 쉬고 싶어지는 그 겨울엔, 두 발이 흠뻑 젖은 너를 툭툭 털어줄게. 눈물은 닦아줄게. 바삭하고 시원한 흙과 함께 너를 숨겨줄게. 재워줄게. 낮은 목소리로 자장가를 불러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