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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치 Mar 27. 2021

칼라디움



봄엔 깨어나고 겨울엔 잠을 자야 하는 구근 식물. 천남성과. 따뜻한 곳에서 재우지 않고 기르다 보면 어느 순간 약해져 죽을 수도 있다고 . 올해 겨울에 잠들지 않으면 내년 겨울엔  자야 하는 식물인 거지. 습도와 온도에 예민하고, 까다로운 만큼 화려하고 아름다워. 시선을 잔뜩 빼앗는 너른 이파리들. 흐르는 줄기의 .

작은 잎의 스트로베리스타를 며칠  하나 데려왔고, 오늘은 구근 상태의 문라이트가 작업실로 도착했어. 구근이 싹을 올릴 때까지, 온도 30도에 습도 90프로를 유지하라고 하는데 지금 계절에 30 되는 곳이 어딨어. 하는  없이 방으로 데려왔어.

혹시라도 씌워둔 비닐을  깨물고 화분을 넘어트릴까 싶어 고양이들은 거실로 내보냈어. 그러니 지금  방에 눈을 뜰락 말락 한 유기체는 나와, 칼라디움 문라이트뿐야.

아득할 정도로 아름다운 칼라디움들을 모니터 너머로 구경하고 있다 보면, 원치 않아도 너를 떠올리게 . 충분히 쉬지 않으면 자주 어지러워하는 너를.  말을 듣는  마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눈물을 뚝뚝 흘리는 너를. 조금이라도 과습하면 금세 물러져 망가져 버리는 구근처럼, 너를 괴롭히는 일들에 초연하지 못하고 연약한 너를.

칼라디움 구근은 펄라이트를 잔뜩 섞어 가볍고 물이  빠지는 피트모스에 얕게 숨겨뒀어.

세상천지 너를 옥죄고 괴롭히는 일들로부터 너를 오래오래 지켜낼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디에도 보내지 않을래.  곁에서 현실에   붙이고 살아낼  있도록 작은 온실처럼 너를 보듬을게. 네가 이파리를 올려내다 지쳐, 쉬고 싶어지는  겨울엔,  발이 흠뻑 젖은 너를 툭툭 털어줄게. 눈물은 닦아줄게. 바삭하고 시원한 흙과 함께 너를 숨겨줄게. 재워줄게. 낮은 목소리로 자장가를 불러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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