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은 피할 수 없지만, 그 의미를 찾는 것은 선택이다

— 빅터 프랭클 (Viktor E. Frankl), 『죽음의 수용소에서』

by 정재한

"내 주변 사람들은 다 한번에 되던데?"

"내 친구는 몇년째 시도중이야."


시험관 아기 시술.

누군가는 고민한 기간이 무색하게 금방 임신이 되기도하고,

어떤 집은 오랜 도전끝에 3000만원이나 쓰고 얻었다고 태명이 삼천이인 집도 있다.


나도 시작하기전엔 몰랐다.

시험관 과정에 돈이 이렇게 많이 드는지도, 그리고 얼마나 다양한 케이스가 '난임'이라는 이름의 자루에 함께 뒤섞여있는지도 말이다.


원인이 명확하고, 해결 방법이 있는 난임의 경우는 그 바다를 손가락으로 찍어먹어보는 정도에 불과하다.

실패를 거듭할수록 원인을 찾기위해 자궁경, PGT 등 검사와 주사가 늘어난다.


TV에서는 난임 부부가 서로 손을 맞잡고 우리 아기, 잘 착상돼라. 하고 희망을 품는 모습. 혹은 다음에는 아기천사가 우리에게 와줄거야. 하고 부둥켜 위로를 나누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사실 이 부분이 난임치료과정중 가장, 그리고 거의 유일하게 스윗한 부분이지 않을까.


실상은 주로 이런 각박한 대화를 나눈다.


"28일 채취니까 절대 출장 잡으면 안돼."

"이식일에 혼자 택시타고 집에 올수 있겠어?"

"아.. 내일 이식인데 나 감기기운있어. 어떡해?"

"오늘 주사 맞았어?"

"멍때문에 더이상 주사 맞을데가 없는데 허벅지에 놔도 되나?"

"오늘 너무 바빠서 약먹는거 까먹어버렸어."

"스트레스 받지마.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안될수도 있어."


만약 난임이라는 요리에 레시피가 있다면 '달콤한 기대 한스푼 + 매콤한 예민함 열스푼 + 메스꺼운 불안함 서른스푼' 정도일 것이다. 착상여부를 결정짓는 피검사 후에 이 물약은 감동의 눈물로 달콤짭짤해지기도, 좌절함량 100%의 쓰디쓴 고배가 되기도 한다.

그때까지는 착상을 돕는 호르몬제를 매일 투여하면서 끊임없이 난임사례를 찾아해본다. 볼줄도 모르면서 남의 배아 사진과 내 것을 눈비비며 여러번 비교한다. 미혼때였으면 기겁했을 남의 쉬야가 묻은 임테기 사진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이식 5일째 한줄', '6일째 한줄' '이식후 착상 증상' 따위를 새벽내내 검색한다. 새벽의 유일한 친구 챗gpt를 닥달하며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한다. 미치광이가 따로없다.


그렇게 날이 맑고 아침 첫 소변으로 임신테스트를 하고나면 이제 미치광이에 이어 사팔뜨기가 될 시간이다.

KakaoTalk_20250612_144448820.jpg

자연광 밑에서도 보고, LED 밑에서도 보고, 사진찍어 밝기조절하고 확대도 해보고...

아무리 테스트기를 노려본들 없을 아이가 생길리도 없고, 무신경하다고 해서 있던 아이가 떠날리도 없는데 그렇게 사서 고생을 한다.


그래서 '알수없는것'과 '쓸모없는것'에 의미부여를 하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임신을 위해 내가 컨트롤 할수 있는것이라고는 그저 스트레스호르몬을 줄이고 심장박동을 정상으로 유지할수 있도록 심호흡하고 즐겁게 지내는 것뿐이니 그것에만 신경을 집중했다.

의사선생님은 뛰지말라고 했지만, 마음이 내키면 빠르게라도 걷기라도하며 소소한 즐거움을 찾았다.

저염식 대신 국밥, 깍두기와 함꼐 행복감을 느꼈다. 안절부절하는 남편옆에서 눈치가 살짝 보였다. 하지만 개념없고 불안해보여도 이게 내 최선이었다.


나는 뼛속까지 무교다.

착상은 신과 우주의 영역이라는데, 그렇다면 내 생각으로 임신은 내가 아등바등 힘써서 될 일이 아니었다.

신의 완벽한 계획이라고 한다면 내 작은 일탈들까지 예측되어있을테니 굳이 조절할 필요가 없고,

우주의 기운이라고 한다면 모든 변수와 확률에 따른 과학적 결과로써 성공과 실패가 갈릴테니

이것 또한 내가 어줍잖은 머리로 계산해 볼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었다.


자가 주사를 맞을때도 항상 아무 생각없이 맞았다. 고혈압이나 당뇨를 앓아서 매일 약을 먹어야하는 게 당연한 사람처럼 받아들이려고 노력했다.

인간의 뇌는 실제로 아무일도 하지 않을때, 스스로 회복을 시도한다고 한다.

멍때리는 동안 뇌속에서 지난 시간을 복습 하고, '내가 지금 겪는 고통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등의 특정한 의미를 통합하게 해주는데, 이게 회복탄력성의 기반이 된다고 한다.

의식적으로 동기부여와 응원을 계속하지 않아도, 마음편한 시간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퇴색되는 이유와 조각나는 의미를 모아 '내가 왜 이 고통스러운 짓을 하고 있을까'에 대한 답을 찾는다는 뜻이다.


어쩌면, 응원과 최선을 빙자해 스스로를 옥죄며 특별한 뭔가를 계속 하려고 하지 말고 쉬는 시간을 주는게 더 이로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나조차도 이식날 남편 차에서 사탕을 하나 빼앗아들고 내리는 특별한 의식을 행하고야 말았다.

"삼신할매가 단 걸 좋아하신대. 애기랑 바꿔달라고 할거야."


진지한 얼굴로 신에게 드릴 뇌물을 챙기는 무교인을 보며, 기독교 모태신앙인 남편은 아무말 없이 웃었다.

뭐야 저 웃음은! 재미있는건가, 안쓰러운건가, 부질없다고 생각하는 건가...

남편의 생각은 모르지만 내 마음은 분명했다.

'하.. 나 진짜 간절하네.'


사탕조공이 효과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다행히 지금 내 뱃속에는 딱 하리보 젤리만한 둘째가 자라고있다.


KakaoTalk_20250610_131755633_01.jpg
KakaoTalk_20250610_131755633_02.jpg

남들이 보기엔 내가 조바심하나 없이 평온해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실 나는 아직도 시험관의 그림자에서 나름의 발버둥을 치고있다.

혹여나 있을지도 모를 일이 무서워서 제대로 태명도 지어주지 못했다... 뱃속의 꼬물이를 이렇게도 불렀다가, 저렇게도 불렀다가 하며 가끔 응원을 보낼 뿐.

벌써부터 애정을 쏟기보다는 시험관 시술기간에 했던것처럼 마음을 비우려고 노력중이다.

안정기까지는 아직 안심할수 없기 때문이다. 아니 시험관이 아니더라도 출산하는 날까지는 어떤 엄마도 안심할수 없을것이다. 실제로도 임신유지를 위해 20주까지 혈전방지약을 자가주사해야하는 상황이기도 하다.


누군가 성별을 물어보거나, 출산 이후의 이야기를 꺼내면 "그것보다 일단 잘 낳는게 문제죠 뭐. 지금도 배에 애기가 잘 있는지 모르겠어요."라고 한다.

그러면 지인들이 '왜이렇게 무서운 얘기를 하냐'라며 민망해한다.

다소 차가워보이고 아기에게도 왠지 미안하지만 상상과 희망을 빼고 최대한 무덤덤하게, 사실에만 집중하는 것이 난임을 버티는 쫄보 엄마의 방법이다.


이미 시작된 시술의 고통은 내가 어쩔 수 없지만, 이 과정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것인지는 개인의 선택이다.


난임부부에게 누군가 '난임이란 힘든것이다' 혹은 '난임 그거 아무것도 아니더라' 라고 하더라도 그 의미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나처럼 '그냥그런것, 특별하지 않은 것'으로 정의해 이 시간을 버텨낼 것인지, '꿈과 희망을 찾아가는 험난한 여정'으로 기록해 두고두고 꺼내볼 추억으로 남길것인지는 부부 둘이서 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을 선택하든 당사자의 선택이 무조건 옳다.
























작가의 이전글때이른 열매는 배탈나고, 기다리는 꽃은 안 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