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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여나 Jun 10. 2023

인권강사조차 도망쳐

또 다른 절망을 경험하다


앞서 반복적으로 얘기한 바와 같이

이 회사는 사람 만나는 일을 한다.


매년 인권교육을 듣는 것이 필수다.

놀랍게도 매년 그분도 함께 인권교육을 듣는다.

교육실에서, 같은 강사에게. 같은 내용을.


돈, 시간 들여서 교육을 받으면 뭐 하나?

'그분'의 존재는 교육을 무의미하게 한다.


직장 내 괴롭힘, 인권침해에 대한 예시를 보며 우리는 다들 '그분'을 떠올렸다.

마음속으로 소리 없는 아우성을 쳤을 것이다.


머리로는 알지만 현실은 그러지 못하는,

당연히 보호되어야 하는 일이 현실 같지 않은,

흔히 말하는 ’요즘 시대‘가 아닌 현실 속에 있다.


'요즘 시대'에 걸맞게 강사는 익명의 게시판을 띄워서

신변을 보호해 준다며 회사와 근무환경에 대한 솔직한 의견을 쓰게 했다.


강사는 익명의 힘을 지켜주기 위해 전 직원이 다 함께 휴대폰을 들고, 의견을 적든 적지 않든 휴대폰을 손에서 내리지 못하게 했고! 놀랍게도 하나 둘 의견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익명의 힘이었을까?

그분이 선을 넘고 있던 탓이었을까?

인권강사에 대한 무한 신뢰였을까?


살벌한 의견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직위가 올라가는 건 신분이 올라가는 게 아니다.‘

‘감정을 배설하지 말라‘

‘야근 문화. 업무 과중.‘

‘존중받으면서 일하고 싶어요.‘

‘인권침해 상황에서 관리자의 방관적 태도 시정 요청‘

‘아랫사람은 배려받을 가치조차 없다고 생각한다.‘

등등...


맨 뒤에 같이 앉아있던 그분과 최고관리자가 놀랐다.

(중간에 자리를 떠났던 거 같기도 하고...?)


인권강사는 동공지진을 감추지 못하며, 있는 힘껏 포장하기 시작했다.

"직원들이 비상등을 켜준 것이다."

"변화를 희망하는 건 회사에 머물고 싶다는 것이다."

"지금부터 우리가 만들어가면 된다"와 같은 말들로.


최고관리자는 이 지경이 되어서야 상황의 심각성을 눈치챈 건지,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며 쿨한 척!

‘책임감'을 운운하며, ‘인권지향적인 회사'로 거듭나기 위한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하지만 이 순간에도 답변은 달렸으니...

인권지향적인 회사? 그런   해요? 직원들은  지키고 있는데요.‘




인권강사는 우리 직원들을 안타깝게 여기며 아주 의욕이 넘치게도 전체 직원들을 직책별로, 역할별로 그룹핑하여 집단면담을 시작했다. 꽤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일이었다.


판을 널찍히 깔아주니 직원들이 날아다녔다!

아마 동료들을 믿고 큰 용기를 낸 것이겠지.

그동안 어떻게 참았나 모를 정도로,

직설적이고 적나라한 인권침해 현실이 쏟아졌다.


놀라운 건,

그분은 그분대로!

최고관리자는 최고관리자대로!

본인들의 고충을 쏟아내기 시작했다는 점...


인권강사여서였을까?

만인은 평등하고, 모두의 인권이 소중해서였을까?

그렇게 최고관리자와 그분 또한 이해하게 됐을까?


어느샌가 그분은 가해자이자 피해자가 되어 있었다.

인권강사에게는 무작정 당할 수밖에 없었던 직원들도 안타깝지만, 저렇게 밖에 행동할 수 없었던 그분의 입장도 위로가 필요했나보다.


인권강사는 모든 인터뷰를 끝내고 내용을 정리한다며 시간을 갖다가, 그렇게 도망쳐버렸다.


도망쳤다는게 무슨 말인가 싶겠지만, 말 그대로다.

약속된 기한에 나타나지 않고 잠수를 타버렸다.

(심지어 이 프로젝트는 인터뷰 꼬박꼬박, 시간 단위로 거금의 돈이 들어간 일이었다...)


그래. 인권강사의 개인적인 판단을 옳지 않다고 비난할 순 없어도, 예고 없이 프로젝트를 포기하고 도망친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지 않나. 참나.


하루아침에 인권강사조차 포기한 회사가 됐다. 망할.


구조적으로 어쩔 수 없었다 여겨야 하나?

우리만큼이나 그분도 힘들었다 이해해야 하나?

결국 해결할 수 없음을 받아들여야 하나?




수개월이 지나서야 인권강사가 연락이 닿았다.

감당이 안돼서 도망쳤다는 사과와 함께 돌아왔다.


돌아와서 무엇을 했냐고?

뻔하디 뻔한 교육을 했다.

마치, 고충을 쏟아냈던 직원들 안 남았지?라는 듯이...

참으로 절망스러운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꾸역꾸역, 의미는 있었다.

그분의 직장 내 괴롭힘을 수면 밖으로 끌어올린 것.

부당한 조직문화를 최고관리자 책임으로 삼은 것.


그렇게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움직여야 했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정의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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