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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양냉면먹고파 Feb 29. 2024

30대 초반에 이혼하고 얻은 결론

(결론) 결국엔 내 사람이 아니었음을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


나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냐던, 나와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냐던 불안 가득한 내 질문에 대한 그의 대답이었다.


20대 후반, 남들이 볼 때 전혀 부족함이 없는 안정적인 직장에 들어가고 난 뒤 그를 만났다. 요즘 세대들이 흔히 이야기한다던 연애를 할 수 없는 ‘현실적인 이유’는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자연스레 그와 만나는 동안 자연스레 언젠가는 이 사람과 결혼하겠지라고 생각했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됐던 걸까. 알고 있었다. 퍼즐 조각처럼 딱 맞는 그런 관계는 아니란 걸. 결혼하게 되면 내가 포기해야 할 것들, 그리고 그것들로 인해 반사적으로 그가 입게 될 스트레스들이 분명히 있을 거란걸.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것들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정말 꼭 맞춘 것 같은 그런 사람이 어딨어. 다 맞춰가면서 양보하면서 사는 거지’


30년 넘게 우리 부모님을 보며 느낀 점이었다.

우리 부모님은 전혀 서로의 성향이 맞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그게 오히려 당연하다고 생각했었고, 오히려 전혀 갈등과 부딪힘이 없는 관계는 한쪽이 불행해지는 관계라 믿었다. 동등하게, 대등하게 하나씩 양보하면서 그렇게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게 진짜 사랑이자, 결혼은 그에 대한 결실이라 생각했었다.


그런 내 믿음에 보답이라도 하듯, 우리의 5년은 서로에게 맞는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이었다. 내 일부를 포기하고 참고, 그의 일부를 포기하고 참고… 함께한 시간만큼 당연하다고 생각했었다. 그 과정 속에서 나는 그의 사랑을 느꼈고, 그에 대한 사랑은 더 커져갔다. 결혼 전 흔히들 겪는다는 메리지 블루가 아주 잠깐 왔을 때, 나는 그에게 물었다.


”우리 잘할 수 있겠지? “

“그럼 잘할 수 있지.”


적어도 겉으로는 확신과 같던 그의 대답으로 인해 나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드레스를 입었고, 식장에 입장했다. 그에 대한 믿음이 컸던 만큼 생각이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던 그의 말과 이후 아무 대답도 돌아오지 않던 침묵과 같던 한 달이 넘는 시간은 나에게 지옥과도 같았다. 믿음이 하루하루 나에게 전치 4주의 중상을 입히며 깨지던 시간들.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자책으로 제대로 밥을 소화시킬 수 없던 시간들. 그리고 그 긴 침묵을 깨고 마지막으로 그가 나에게 건넨 말.


“다시 돌아간다 해도 똑같을 것 같아. 이제 서로 괴롭히는 일은 하지 말자.”


결혼식을 올리고 반년이 채 지나지 않은 날이었다.


그에 대한 원망과 사랑하는 사람을 조금 더 이해하지 못했던 나 스스로에 대한 원망과 혐오감이 뒤섞여 앞으로 나아갈 수 없던 시간들이 몇 달 동안 계속 됐다.


왜 헤어졌냐던 주변 사람들의 말에 나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를 더 이해해주지 못한 것들에 대한 나 스스로가 너무 미워서, 부끄러워서 아무 말도 못 했다. 그를 많이 사랑했기에, 내가 조금 더 부족한 사람이었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혼자서 몇 날 며칠을 꼬리에 꼬리를 무는 고민들과 생각에 괴로워하다 이러다 정말 죽을 것 같다던 순간에, 문득 깨달았다.


‘미안한데, 그래도 나 최선은 다했어. 항상 그게 나에겐 최선이었어.‘


너에게만큼은 내 마음을 아낀 적이 한 번도 없었고, 맛있는 것들 좋은 것들을 보면 항상 생각나는 사람이 너였다. 네가 좋아하는 파스타를 해주려 레시피를 잔뜩 저장해 놓았고, 너와의 시간을 보내기 위해 내 할 일은 잠을 아껴가며 먼저 끝내놓았고, 홀로 남겨진 주말의 아파트에서도 너에게 떼쓰지 않는 법을 배웠고, 감정적으로 상처 주는 말들을 하지 않으려고 말을 먼저 고르는 법을 배웠다. 너를 사랑했기에, 너와의 관계가 나에게는 너무나도 소중했기에, 그 과정이 힘들었지만 그래도 견딜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우리가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건 아마 서로에게 우리가 인연이 아니었던 거지. 내가 부족해서도, 네가 부족해서도 아님을 이제는 안다. 살아가면서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인정해야 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그런 것들. 그걸 인정하고 나니 내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너와 사랑했던 시간들 속의 내가 참 예뻤구나라는 반짝이는 추억만을 남긴 채 너를 보낼 수 있었다.


그러니 너도 부디 아무 탈 없이, 건강하고, 편안하길. 그 결론이 내 마음과 같진 않더라도 항상 행복하길.


또 최선을 다하다 보면 정말 인연인 사람을 만나겠지. 너도,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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