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조금은 유연한 결기로 나아가 볼까요?
『 표현 수집가의 말맛 노트』는 우리가 값진 표현들을 얻어 더욱 풍성하게 소통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제작하는 연재 노트입니다. 매주 월요일, 신선하고 다채로운 표현들을 하나씩 새겨보세요-!
1) 못마땅한 것을 참지 못하고 성을 내거나 왈칵 행동하는 성미
2) 곧고 바르며 과단성 있는 성미
하루 1.5L 이상의 물을 마시고, 볕 아래서 20분 이상 광합성을 하고, 아침저녁으로 방을 환기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통화하는 일. 이런 소박한 일상의 편린들은 모이고 모여 나를 스스로 귀히 여기게 만드는 장치가 되곤 한다. 특히나 일을 하지 않는 틈틈마다 결기 있게 지속하는 운동, 출사, 글쓰기, 독서와 같은 생산적 루틴들은 언제나 나를 새로운 자리로 이끌곤 했다. 스스로 지켜내는 나만의 법칙들이 내게 묵직한 길잡이이자 강건한 지지대가 되어주었을 뿐만 아니라, 때때로 내 정체성을 만들어주기도 했으니까. 가끔씩 인생의 새로운 막이 열릴 때면 낯선 법칙들이 하나둘씩 추가됐고, 그것들은 또다시 새로운 모습의 나를 고대하게 했다. 그리고 이런 법칙들은 종종 예고도 없이 닥쳐오는 불안정한 외부적 상황에 쉬이 흔들리지 않게끔 나를 지켜주곤 했다.
하지만 이런 루틴들이 언제나 나를 지켜주기만 하던 건 아니다. 스스로에게 가장 가혹했던 시절엔 이런 규칙들이 오히려 강박으로 변질돼 나를 옭아매곤 했다. 행복을 위해 시작했던 일련의 행위들이 점차 욕심을 부리기를 거듭하다가 끝끝내 억압으로 변질되어 버리는 결말들을 수도 없이 겪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내 몸을 종종 바스러뜨린다는 것을 깨달은 후로, 지금은 어느 정도 유연히 사는 법을 체득하게 되었다.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아도 그럭저럭 괜찮은 내가 되어가는 중이랄까. 완벽보다는 완성이 목표인 인생을 만들기 시작했다. 매일을 나만의 방향 안에서 정성스레 살아내지만, 동시에 어긋남조차도 나의 소중한 일상이라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 과거에는 종종 제 풀에 지쳐 쓰러졌다면, 지금은 수틀리면 수틀린 대로 나아가는 자유를 만끽하고 있다. 고집스런 결기만 부리던 내가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돌아갈 줄도 아는 성미로 살아가게 된 것.
흐르는 강물에 담긴 뜻은 만물이 변하고 있어서 두 번 다시 마주칠 수 없다는 게 아니라, 어떤 것은 변화에 의해서만 같음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中
시시각각 변화하는 상황 속에서도 인생을 즐길 줄 아는 나로 존재할 때 비로소 진정한 단단함이 찾아든다. 세찬 강물과도 같은 결기를 부리며 살아가는 요즘의 일상에는 창조적 활기가 가득하다. 이런저런 일에 한창 열을 내다가도 창밖이 너무 빛나면 무작정 나가 걷는다. 걷다 걷다 맛있는 게 당기면 그날은 그냥 퇴근이다. 이런 일상이 적성에 잘 맞는 것을 보니, 아마도 나는 태생부터 유영하며 살아야 하는 운명이었나 보다.
오늘은 마포출판문화진흥센터에 입주한 첫날이다. 매일을 내 방식대로 꼿꼿이 살아내는 나만의 결기가 또 한 번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다. 결기가 가득 들어찬 입주사 대표님들이 이리저리 분주히 움직이는 모습들을 보니 괜스레 이곳에서 내 꿈도 멋지게 키울 수 있을 것만 같은 용기가 샘솟았다.
이제는 부디 지칠 때까지 나를 채찍질하다 어느 날 왈칵 결기가 나서 이곳을 박차고 떠나버리지 않게, 이전보다 한결 유연한 결기로써 나만의 업을 유지할 수 있기를. 나만의 속도로 천천히 차근차근 나아가며 부디 사랑하는 일에 휩쓸려 나를 잃어버리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연재 브런치 북 『 표현 수집가의 말맛 노트』에 등장하는 단어의 정의들은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네이버 국어사전, 그 외 기타 문학 속 표현들을 참고하여 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