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알간 오이냉국 같던 여름날이 다시 올까요?
『 표현 수집가의 말맛 노트』는 우리가 값진 표현들을 얻어 더욱 풍성하게 소통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제작하는 연재 노트입니다. 매주 월요일, 신선하고 다채로운 표현들을 하나씩 새겨보세요-!
1) 산뜻하게 맑다.
2) 국물 따위가 진하지 않고 묽다.
3) 눈이 맑고 생기가 있다.
4) 정신이나 의식 따위가 또렷하다.
모두의 한여름에 에어컨이 없던 시절, 일 년 중 가장 더운 절기를 지날 때마다 어머니는 장을 풀고 오이를 송송 채 썰어 마알간 냉국을 만들어주시곤 했다. 하루 전날 냉동고 한켠에 얼려두었던 둥그런 얼음들도 동동 띄워서. 그 오이냉국이 내게는 가장 정겨웠던 어린 시절의 풍경 중 하나라, 나는 아직도 뜨거운 여름을 어우렁더우렁 다양한 방법들로 이겨내는 것이 좋다.
그때보다 한층 끈적해진 요즘의 여름엔 어쩐지 그런 오이냉국 같은 시간이 점차 희미해져만 간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저마다의 고충을 안고 끙끙대기에 바쁘고, 나는 내 별들 같은 이들의 아픔을 물끄러미 지켜만 보며 하루하루를 견딘다. 우리들이 한데 모여 서로 사랑을 나누고, 키워가기에는 우리의 틈틈마다 거친 일상의 풍파가 쉴 새 없이 들이닥친다. 한 떨기 들꽃 같던 어머니의 머리칼에는 어느덧 세월이 흩뿌려놓은 눈송이들이 고스란히 자리를 잡았고, 꼼지락대던 작은 아이는 어느덧 나보다도 더 크게 자라나 사회 속에 던져진 채 끝도 없는 사투를 벌인다. 마알간 미소로 딸들이 지저귀는 수다를 들어주던 아버지의 미간에는 눅진한 주름이 말 볼기에 새겨진 화인처럼 자리를 잡았다. 20대 내내 나와 함께 재잘거리던 친구들, 세상을 온통 함께 쏘다니며 천진난만하게 누비던 내 반쪽까지. 모두가 각자의 날카로운 당면 과제 앞에서 시름시름 앓고 있다.
과연 우리가 함께 이 무더운 여름을 무사히 지나칠 수 있을까. 이 사람들이 나와 깔깔대며 이 모진 소용돌이를 제쳐버릴 방도가 있을까. 여유라곤 찾아볼 수 없는 이 지쳐가는 전쟁터 속에서 무사히 살아남아, 언젠가 다시 마알간 오이냉국 앞에 정답게 둘러앉은 채 안온한 말들을 가볍게 핑퐁하는 그날이 왔으면 좋겠다.
언젠가 우리 모두가 말갛게 웃으며 그 어떤 후덥지근한 여름도 함께 칠-하게 흘려보낼 그런 날이 다시 오기를.
연재 브런치 북 『 표현 수집가의 말맛 노트』에 등장하는 단어의 정의들은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네이버 국어사전, 그 외 기타 문학 속 표현들을 참고하여 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