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겨울에 낙엽을 실어 보냅니다.
『 표현 수집가의 말맛 노트 』는 우리가 값진 표현들을 얻어 더욱 풍성하게 소통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제작하는 연재 노트입니다. 매주 월요일, 신선하고 다채로운 표현들을 하나씩 새겨보세요-!
1)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조금씩.
시나브로 가을, 아니 초겨울이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열기가 야금야금 식다가 이내 진짜 겨울이 왔다. 이맘때쯤이 되면, 각자 생각하는 겨울의 심상이 각자의 마음에 슬그머니 자리하기 시작한다. 겨울 한철이 다가오면, 내가 종종 23년도에 홀로 떠났던 삿포로의 겨울을 떠올리는 것처럼. 올해의 겨울은 어떨까. 한껏 기대하는 마음을 품고, 주말에는 바쁜 틈에 시간을 내어 겨울의 초입을 즐겼다.
가을의 끝자락에 서서 쨍하게 물든 낙엽길을 살며시 밟아보았다. 은행나무 앞에서 서로의 모습을 필름 카메라 속에 차곡히 쌓고 있는 사람들이 유독 눈에 띄었다. 분명 지난주까지만 해도 물들다 만 듯하던 단풍이 시나브로 절정을 지나고 있었다. 온 동네를 울긋불긋 수놓는 이 찬란한 찰나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 기다림 끝에 느낀 건, 낙엽은 언제나 계단식 성장을 하는 것만 같다는 것. 고요히 세월을 버텨내다가 하루아침에 붉게 물드는 것이 꼭 그렇다.
언제나 계단식 성장을 바라보며 산다. 정신적인 면에서도, 육체적인 면에서도, 일적인 면에서도 그렇다. 시나브로 한 움큼씩 자라나는 스스로를 온 마음으로 지지하며 나아가는 중이다. 이따금씩 노력을 하다 지치기도 하기만, 이 시간들을 버텨내면 분명 더 큰 내가 온다는 것을 알기에 턱에 잔뜩 힘을 괴고 견디기를 반복한다. 고난의 시간이 지나고 겨울의 한복판에 서면, 그때는 이 안간힘을 모두 내려놓고 온전히 흰 눈밭만을 뒹굴겠다고 다짐하며, 남은 두 달을 마저 단단히 보내기로 했다.
요즘은 유독 바쁘다는 핑계로 얼굴을 보지 못하는 시간이 늘어나는 탓에, 문득 사랑하는 이들에게 이 바스락거리는 낙엽들을 한 움큼 주워 담아 실어 보내고픈 마음이 일었다. 당신의 겨울 초입에도 입동을 버텨낼 단단함이 조금씩 자리하길 바라며. 마음만은 굴뚝같은데 스스로를 일궈내느라 사랑을 베풀 여념이 없는 나날은 계속된다. 올겨울엔 부디 따스한 온기를 소소히 나눌 찰나들이 많아지기를 고대하며 오늘도 나아간다.
The Christmas Tree in Biei (February 2023)
연재 브런치 북 『 표현 수집가의 말맛 노트』에 등장하는 단어의 정의들은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네이버 국어사전, 그 외 기타 문학 속 표현들을 참고하여 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