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걷는 시간이 보장되어야만 하는 계절이 돌아왔다.
『 표현 수집가의 말맛 노트 』는 우리가 값진 표현들을 얻어 더욱 풍성하게 소통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제작하는 연재 노트입니다. 매주 월요일, 신선하고 다채로운 표현들을 하나씩 새겨보세요-!
1) (사전적) 해가 처음 솟을 때의 빛
2) (사전적) 사방으로 뻗친 햇살
3) (문학적) 아침에 솟아오르는 햇볕만큼 희망적인 무언가
하루아침에 가을이 왔다. 낮 시간이 길게 늘어진 여름을 사랑하지만, 사방에서 몰려드는 찬기가 피부의 감각을 깨우는 계절 또한 그만의 매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바깥의 공기가 내 안의 온도보다 한참이나 쌀쌀해질 즈음이면, 한동안 소란스러웠던 감정도 어느새 차분해지곤 하니까. 특히나 이 계절에는 열정을 다했던 한 해를 반추하듯 길가에 떨어져 바스락거리는 낙엽 더미 사이를 가르며 찬찬히 길목을 걸을 수 있어 좋다.
하지만 어느새부터 길고 긴 여름과 겨울이 앞다투어 존재감을 뽐내기 시작한 틈에, 그런 가을이 갈 길을 잃은 지 오래다. 그래서일까. 이 단출한 계절이 전보다 더 소중해졌다. 그래서 더더욱 가을에 홀로 걷는 이 시간이 귀하다. 그런 시간을 많이 가진다면, 우리를 스치듯 떠나가는 이 계절을 잠시나마 붙잡아둘 수 있을 테니.
최근 들어서는 아침 6시 무렵 깨어나 산책으로 조금 이른 하루를 열기 시작했다. 짤막해진 햇살을 조금이라도 붙들고자 고질적인 수면 패턴을 뒤바꾼 것. 그때쯤이면 하늘은 아직 어스름히 잠들어있고, 산책로 위로 엷은 햇귀가 조금씩 번져오기 시작한다. 무거운 몸을 간신히 일으켜 밖으로 나간 뒤 그 위를 걷는다. 그러고는 그 위에서 계절이 흘러드는 숨결을 서서히 감각한다. 그러다 보면 걱정스런 마음들은 모두 달아나버리고, 잠들어 있던 결기가 샘솟기 시작한다. 특히나 해야 할 일들이 잔뜩 쌓여 괜스레 조바심이 들 때면, 모두가 잠들어있는 이런 아침의 고요가 나를 한껏 토닥인다. 언제나 불안정한 현재와 불확실한 미래를 끌어안고 살지만, 피어오르는 햇귀를 바라보며 하루를 시작하면, 왠지 내가 좀 더 부지런한 사람이 된 것만 같아 안정을 찾는다. 특히나 평소 더위를 많이 타는 탓에 유독 가을 산책은 머릿속을 더 시원히 비워주는 듯하다. 곳곳에서 월동을 준비하는 나무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런 나뭇결을 스치며 이만 올해를 보내줄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도 되뇐다.
회색의 시름을 모두 잊고, 걷는 동작에만 집중하여 앞으로 나아가다 보면 슬그머니 고개를 내밀던 햇귀는 어느덧 사방으로 세차게 뻗치기 시작한다. 특히나 가을의 그것은 찬 기운 속에서 귀할 정도로 강렬한 존재감을 내뿜어서 사람을 괜스레 들뜨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냉기 속에 스미는 따스한 햇살을 더 길게 느끼고 싶다는 마음을 겨우 접어들고 오늘을 살아낼 자리로 돌아간다. 홀로 걷는 시간이 보장된 이 일상의 여유로움이 되도록 아주 오래 유지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산책하다가 발견한 산책 냥이입니다. :)
연재 브런치 북 『 표현 수집가의 말맛 노트』에 등장하는 단어의 정의들은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네이버 국어사전, 그 외 기타 문학 속 표현들을 참고하여 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