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낼 수 없는 넋두리
큰일이 벌어지기 전엔 종종 난데없는 예지력이 발동되곤 한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던 날 아침에도 그랬다. 생전 한 번도 꿔본 적 없는, 이상하리만큼 성대한 파티가 거국적인 규모로 열리는 꿈을 꿨다. 그 기이하게 화려한 장면들을 꾸고 일어난 나는 할아버지의 임종이 코앞으로 다가왔다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이 알 수 없는 촉이 발동되는 것이 가끔은 좀 무섭기도 하다. 좋은 소식을 가져다줄 꿈이면 참 좋겠는데, 꿈자리가 뒤숭숭하면 여지없이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질 것만 같아 두렵다. 지난 주말에도 그랬다. 일반적이지 않아 잔상에 진하게 남는 꿈을 한바탕 꾸고 일어났다. 며칠이 지나도 찜찜하게 남았을 정도로 괴이한 장면들. 불안한 마음을 잠재우겠다고 괜스레 이곳저곳에 꿈을 떠벌리고 다녔다. 12시가 되기 전에 꿈을 발설하면 그 기운이 날아가버린다는 미신이라도 믿고 싶었다. 그리고 다행히도 그 꿈은 소위 말해 개꿈으로 증발하는 듯했다.
그러고 나서 정신없이 바쁜 한 주를 보내던 와중, 어제저녁 집을 나서는데 문득 한 시절 가까이 지냈던 너의 말소리가 들렸다. 환청이라기엔 좀 그렇고, 알 수 없는 타이밍에 급작스레 나를 부르던 너의 목소리가 스쳤달까. 처음엔 요즘 일에 파묻혀 고립된 채 살다 보니, 괜스레 지난 세월 받았던 여러 다정한 말들이 하나둘씩 떠오르는 건가 싶었다. 하지만 그렇다기에는 상처뿐이었던 마무리 끝에 일말의 미련조차 없이 기억에서 너를 비워낸 지 오래였다. 연결된 지인들까지 모두 끊어낸 채 인생에서 깔끔히 지워버렸던 아이. 갑자기 떠오르는 것이 아주 이상할 정도로 영영 잊어버렸던 사람. 그렇게 갑자기 이상한 직감이 발동해 버린 나는 결국 문득 밀려든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쾌쾌히 묵혀두었던 그 아이의 연락책을 1년 만에 처음으로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리고 결과는 생각보다 더 좋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상상치도 못 했던 소식을 목도했다. 음... 이런 결말을 예상하고 꺼내본 건 아니었는데. 내가 미처 이해할 수 없을 만큼 강렬하게 자유롭던 너는 며칠 전 그간 살아내던 시간들을 청산하고 떠났다고 했다. 생각보다 더 빨리. 그것도 우연히. 우연이라는 말보다는 운이 좋지 않았다는 게 맞으려나. 늦은 소식과 함께 멀리서 그의 마지막 여정을 빌게 된 상황이 조금은 괴로웠다. 한 시절 두텁게 걱정스러웠던 사람의 한 세월 끝을 홀로 곱씹는 게 쉽지는 않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와 끊임없이 이별하지만, 각자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을 거라는 믿음이 그나마 그 아픔을 상쇄시켜주니까. 그런 안전장치 하나가 부서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고 해야 하나.
언젠가 네가 답답해하던 나를 광활한 너의 터전으로 데려가 한밤의 유성우를 한가득 안겨주었던 날이 떠올랐다. 아마도 지금쯤 너는 그중의 하나가 되었겠지. 하늘이 분방했던 너를 조금 더 이르게 더 넓은 우주로 데려갔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사실 너는 내게 많은 걸 가르쳐 준 사람이었다. 더 이상 바다를 두려워하지 않을 용기를 주었고, 즐겁게 마시고 듣는 취향을 만들어주었고, 진정한 자유를 즐기는 법을 알려주었던 친구. 그리고 때때로 내가 도랑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면 내 숨통이 트이게끔 해주던 아이. 어제저녁 문득 들려왔던 밝고 명랑한 그 부름이 떠나기 전 나를 찾아온 너의 마지막 인사말이 아니었을까 싶어 온종일 마음이 헛헛했다.
언젠가 최유수 작가님의 『사랑의 몽타주』라는 책에서 사랑은 할 때마다 제각기 발현되는 것이 아니라, 삶 안에서 연쇄적으로 이어지는 거라는 구절을 읽은 적이 있다. 만약 내가 나눠왔던 것들이 그런 거라면 부디 잠시나마 사는 동안 나를 스쳐간 사랑의 편린들은 나를 떠난 곳곳에서도 각자의 반짝임을 안고 평안히 살아갔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와 한 시절을 보냈던 너도 그곳에서 부디 이곳에서만큼이나 마음껏 행복하기를 바란다.
한동안 또 섬에 가기는 어렵겠지.
https://youtu.be/OpnQ1nVNCRY?si=eoi3aNv8WYkNi3I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