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죽었지만, 장례는 없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바로 폐위된 왕, 단종이었기 때문이죠
왕과 사는 남자
"노산군이 영월에서 죽었다."
라는 한 줄의 기록만 남겨지게 됩니다
하지만 충신이자 의리를 지킨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바로 단종의 유배지 영월에 있던 관리 엄흥도였습니다
후대 기록에 따르면
그는 단종의 시신을 수습하고
장례를 주관한 인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왕의 마지막을 지킨 충신으로 부르죠
충신으로 불린 이유는
그 당시 정권은 찬탈 집권 세조였기 때문에
잘못하면 역모죄로 처벌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엄흥도는 목숨을 걸어야 했죠
왕과 사는 남자하지만 그의 행적은 얼마 가지 않아 조정에 소문이 퍼졌고
정치의 탄압을 피해 은거한 삶을 살던 엄흥도는
결국 붙잡혀 단종의 장례에 관여했단 이유로 처벌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이 기록들은 후대에 재해석해 만들어진 기록입니다
숙종 때 가서야 단종을 왕으로 복위하면서
단종 주변 인물들을 충신으로 재구성해
새로운 서사를 써내려간 것이죠
하지만 그 당시 세조가 집권하던 시기임을 고려하면
일부러 불필요한 기록을 없애거나,
기록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왕과 사는 남자엄흥도가 단종의 장례에
관여했을 가능성은 높다고 추측하며,
그 때문에 은거한 삶을 살고
정치적으로 처벌을 받았다는 기록은 확인되지는 않지만
충분히 추측할 수 있는 내용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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