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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작가 Jan 23. 2023

역사:조선의 국모 명성황후의 미화와 만행

조선의 국모라는 자의 두 얼굴

내가 조선의 국모다!


이 말을 들으면 명성황후가 떠오를 겁니다.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많은 조선 백성들이 원통해하고 분해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하는데요

(을미사변:1895년(고종 32) 일본공사 미우라 고로가 주동이 되어

명성황후를 시해하고 일본 세력 강화를 획책한 정변)

그러나 오히려 자신들의

손으로 죽이지 못하고 일본에게 뺏겨서

분통하다고 하는 백성들도 더러 있었다고 합니다.

조선의 국모인 명성황후가 왜 이런 말을 듣게 된 걸까요?



희대의 악녀가 죽었는데 기뻐해야 할지,
우리 조선의 왕비가 시해당했는데 슬퍼해야 할지..


민자영이(명성황후) 죽은 뒤 저잣거리에

이런 말이 나돌았습니다.


그것도 그럴 것이 매천야록에 기록되길


"씀씀이에 도무지 절도가 없어서 흥선대원군이

10년 동안 쌓아둔 돈이 모두 동이 났고,

이로부터 매관매직의 폐단이 시작되었다"


라고 매우 비판적으로 기록했습니다.

그걸 방증하듯 민자영은 자신의 주치의가

결혼한다며 국고의 5분의 1인

100만냥을 축의금으로 주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100만 냥을 

현재의 가치로 환산하면

약 250억 원이라고 합니다.




또한 민자영은 무당과 굿판을 벌이는 것을 즐겨했는데요.

고종을 통해 무당에게 진령군이라는 작호까지 내렸으며

북관묘라는 건물까지 지어줬습니다.

북관묘

굿판을 벌이느라 들어간 모든 비용은

당연히 백성에게서 수탈해 충당했습니다.

군인들에게 봉급을 주지 않았으며, 수탈과 부패한 정치로 백성들이 굶어 죽는 것을 등한시했으며

자신의 사치와 뒷주머니 채우기 급급했던

조선의 왕비였습니다.


민자영이 권력을 잡게 되자 변화된 중앙요직과 지방관직이 변하게 됩니다.

민자영이 권력을 잡으면서

자신의 사람들로 바꾸게 되는데요

이때, 민씨 일족만 1000명 이상 존재했다고 합니다.

돈을 주고 관직을 샀으니 그 관직을 지키기 위하여 백성들에게 계속 수탈을 해야 하며

그보다 더 많은 돈을 민씨 일족에게 받치면

관직을 살 수 있었기 때문에

민자영의 재산은 늘어났으며 백성들의 가난은

더욱 고난해졌습니다.



명성황후

국가의 각종 이권을 열강에 헐값에 팔아버린 국모

미국인 알렌에게 일시금 25만원 받음과 동시에

연간 2만 5천원을 받고

25년간 운산 금광의 특허권을 팔아버립니다.

이 운산 금광의 가치는 4000만원이

넘었다고 합니다.

그 당시 국가의 빚이 1300만원 이었다고 합니다.


허세 바르텍의 기록


"사치는 부릴 때로 부렸으며 

주변의 관직은

자신의 일족에게 나누어 주었으며, 

고종의 시야를

차단해 민생을 살필 생각을 

하지 않는다."


라고 기록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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