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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연희 Aug 03. 2023

5. 엄마라는 사람이 한 말이란 고작 이런 것(3화)

집밥의 배신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


큰딸의 말이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메아리쳤다. 

필요 없어요, 이제 가요.

믿기지 않는다. 

무뚝뚝해도 엄마인 나한테 얼마나 잘하는 딸인데.

처음 유럽 여행을 다녀왔을 때 넌 배낭에서 주섬주섬 선물을 꺼냈지. 벼룩시장에서 엄마가 좋아하는 접시를 잔뜩 사고는 그게 깨질까봐 캐리어에 못 넣고 배낭에 넣어 메고 왔다던, 너무 무거워서 어깨에 멍이 들었어,라며 웃던 네 얼굴이 지금도 생생한데.

그러나 얼마 전 큰딸의 말에는 분노가 서려있었다. 

아무리 그 상황을 되짚어 봐도 도통 납득되지 않았다.

너희들에게 난 밥을 해 준 거잖아. 

그냥, 밥. 실수할까봐 말도 별로 안 했는데. 

고작 그것뿐이었는데 무엇이 큰딸의 신경을 건드렸을까? 

너는 왜 그랬을까?

모르니까 답답했고 아득해졌고 마침내 나도 분노했다.

아니, 엄마한테 말버릇이 그게 뭐야. 

저 편하라고 기를 쓰고 했더니, 가져가라고? 

거기서는 한 마디도 못한 말을 창밖에 대고 퍼부었다. 거기서는 그럴 수 없었다. 뭐가 뭔지 알 수 없었지만 무조건 참아야 한다는 건 알았다. 더구나 아픈 작은딸이 옆에 있는데. 속에서 섭섭함과 억울함이 꾸역꾸역 치밀어 올라와도 어쩔 수 없었다. 두 딸을 위해서. 


어쨌거나 나는 엄마였으니까. 


단단히 잘못된 상태로 어디론가 흘러가고 있었지만 나에게는 그걸 바로 잡을 능력이 없었다. 밥이라면 도움이 될 줄 알았지만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이었다. 그동안 내가 믿어 의심치 않았던 집밥은 가족을 이어주는 끈이었지만 그 끈마저 잘린 셈이었다.

나는 절망했다.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흘러가는 걸 그저 바라보는 수밖에.

큰딸은 하던 대로 매일 전화했다.

나도 하던 대로 전화를 받았다.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그날 일은 입에 올리지 않았다.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그 일이 있고 몇 달이 지난 후,

내가 물었다. 그때 왜 그랬냐고.

큰딸이 말했다. 

들어오자마자 밥을 해야 했냐고. 애는 쳐다보지도 않고 우리 의견은 묻지도 않고 엄마가 하고 싶은 것만 해야 했냐고, 

그랬지, 내가. 다음부터는 먼저 물어볼게.

나는 큰딸에게 사과했다.

그러나 뭔가 부족했다. 그건 두 딸이 자주 지적하곤 했던 나의 나쁜 습관이었다. 큰딸이 그런 나를 하루 이틀 본 게 아니므로 그 정도로 분노할 일은 아닐 터였다. 

속이 시원하게 설명되지 않았지만 그냥 넘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다시 몇 달이 지난 후,

이런저런 일을 겪은 나는 조금 여유로워지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일이 떠올랐고 눈앞이 밝아지는 느낌이 들더니

단번에 이해가 되었다.

그랬구나.

언니는 문을 열고 들어온 엄마가 동생을 보자마자 꼭 끌어안는 장면을 예상했을지도 모른다. 가슴에 품은 채 머리를 쓰다듬고 등을 쓸어주는 장면. 따뜻한 엄마 품에 안긴 동생이 나는 혼자가 아니며,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많다는 걸 깨닫기를 바랐을지도 모른다.

다만 엄마가 너무 많이 울지 말아야 할 텐데, 그런 걱정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든 예상을 뒤엎고 엄마는 동생에게 데면데면 인사하더니 곧장 주방으로 가서 쌀을 씻는다.

밥이 뭐라고.

엄마가 엄마로 할 일은 무시하고 밥이나 하다니.

큰딸은 그렇게 차려진 밥과 냉장고에 남겨질 반찬이 싫었을 것이다.

어쩌면 큰딸은 딸의 감정과 상황은 눈곱만큼도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것만 하는 것 같은 엄마가 타인처럼 느껴졌을 지도 모른다. 

그래, 당연하게 동생을 받아들이고, 아무 불만도 없지만 사실은 버거웠을 거다. 혼자 속앓이를 하며 불안했을 거다. 

  큰딸에게도 위로가 절실했을 터였다. 그러나 엄마의 등장은 혼자인 큰딸에게 위로가 아니었다.

그날 큰딸은 어른이 부재한 엄마, 엄마가 부재한 엄마를 목도했으며

가족 중 어느 누구도 동생을 돌볼 사람이 없다는 걸 깨달았으며 

아무에게도 의지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을 테니까.

오롯이 혼자라는 현실이 새삼스레 자신을 덮치고 깊이 절망했을 것이다.

큰딸의 분노는 거기에서 기인하지 않았을까.

아니다.

그건 분노가 아니다.

언니만 바라보고 있는 저 동생을 혼자서 지켜내야만 하는 외로움.

지독한 외로움이었으리라.


엄마인 나는 너무 많은 시간이 지난 후에야 

큰딸의 외로움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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