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밥의 배신
그렇게 시월이 끝나가고 있었다.
우울증과 공황을 진단받은 작은딸이
큰딸과 함께 지낸 지 이십일이 넘어가던 즈음,
큰딸이 말했다.
집에 데려다주려고. 그래도 될 것 같아.
그래, 잘 생각했어.
내가 말했다.
큰딸이 더는 실험을 미룰 수 없었고, 다행히 작은딸은 덜 불안해하며 안정되고 있었다. 그렇게 바라던 일이었으니 한시름 놓였지만 문제가 있었다. 동생은 엄마 아빠가 있는 청주 집이 아니라 서울에 있는 자기 자취방으로 간다고 했단다. 그러나 언니는 혼자 있으면 나쁜 생각을 할 수도 있으니 절대 안 된다고 했단다. 단호하게.
언니 말이 옳다고 생각하는 동생은 마지못해 동의하게 된 거다.
큰딸이 덧붙였다.
억지로 달래서 보내는 거니까 잘 데리고 있어요. 혼자 있으면 불안해. 병원도 청주로 알아봐서 예약했어. 병원 때문에라도 청주에 있으라고. 엄마 밥 먹고 집에 있는 게 낫지. 스트레스 안 받게 편하게 해 줘요.
그럼, 그럼.
나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여전히 난 밥이라면 할 수 있다. 그런데 큰딸의 말이 머릿속을 맴돈다. 편하게 해 줘요, 편하게 해 줘요. 그러고 싶다. 간절하게. 어떻게 해야 편할까? 무슨 말을 해야 되나? 말을 안 해야 되나?
모르겠다. 자신이 없다. 무면허 운전자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러니까 딸의 우울증과 공황의 전조 증상도 눈치채지 못한 나는, 우울증과 공황이 뭔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나는, 심지어 왜 집에 오기 싫어하는지조차 모르는 나는 무면허 운전자나 마찬가지다.
운전석에 앉기는 해야겠는데 복잡한 도로로 나갈 자신이 없다.
물론 준비는 되어 있었다.
아픈 딸을 딸이 돌보지 않고 엄마가 돌보는 게 맞다, 빠른 시일 안에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내가 그걸 해야 한다는 마음의 준비.
작은딸만큼이나 큰딸도 나의 소중한 딸이니까.
이미 큰딸은 최대치를 했다.
맞다, 이번에는 내 차례였다.
반드시 해내야 한다.
나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자동차에 시동을 거는 마음이 되었다. 사거리가 나오면 깜빡이를 켜고 주저 없이 핸들을 꺾어야 한다. 무면허지만 나는 엄마였고 위급상황을 무시할 수 없다. 어쨌거나 목적지까지 딸을 안전하게 데려가야 한다.
액셀을 밟아 천천히 속도를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