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밥의 배신
드디어 목요일.
하루 휴가를 낸 큰딸이 작은딸을 데리고 출발했다.
십 분 후 도착해요.
작은딸이 보낸 카톡이 핸드폰에 떴다.
열두 시가 넘었으니 배고프겠다는 생각에 나는 잰걸음으로 도자기 그릇을 꺼내고 식탁에 매트를 깔고 분주하게 주방을 오갔다. 십 분 후 두 딸은 방금 불에서 내린 소고기뭇국과 불고기와 오징어볶음에서 하얀 김이 피어오르는 따끈한 밥상을 받게 될 것이다. 식은 밥상에서는 따뜻한 마음이 전달되지 않는다고 믿지만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큰딸 자취방에서 일어난 불편한 진실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두 딸의 환영을 밥상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다.
밥을 푸는데 밖에서 주차하는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고 뛰다시피 밖으로 나갔다.
동시에 차에서 내린 두 딸이 뒷자리에서 커다란 가방 여러 개를 꺼냈다. 큰딸의 얼굴도 작은딸의 얼굴도 밝아보였다.
우리 왔어.
어서 와. 힘들었지?
괜찮아요.
배고프지?
가방을 받아 들며 내가 말했다.
식탁에 나란히 앉은 큰딸과 작은딸.
그동안 나는 거기에 너희를 앉히고 얼마나 많이 밥을 먹이고 싶었던가.
맛있겠다.
큰딸이 말했다.
다행이다. 그렇게 말해줘서.
고속도로에서 뒤에 있던 차가 갑자기 앞으로 확 끼어들어서…
불고기를 집으며 큰딸이 말하자 아까 있던 일이 생각난 듯 작은딸 입 꼬리가 살짝 올라간다. 그러나 큰딸은 오징어볶음이 맛있다며 젓가락질을 하는데 작은딸은 밥을 반 이상 덜어내고 두어 숟갈 정도의 밥을 깨작거릴 뿐이다.
그런 작은딸을 바로 앞에서 본다.
그 일이 있고 이제야 처음으로 제대로 본다.
그 많던 웃음은 온데간데없고 우울한 얼굴로 딱딱하게 앉아 있는 작은딸.
볼이 움푹 패고 광대뼈가 튀어나와 있다. 말라도 너무 말랐다. 웃을 때면 통통한 볼 살에 보조개가 생겼었는데….
작은딸은 그 밥도 다 먹지 못하고 수저를 내려놓는다.
몇 번을 권해도 소용없다.
엄지를 치켜세우고 엄마 밥이 제일 맛있다며 호들갑을 떨어주던 작은딸은 사라졌다. 통통한 볼 살과 보조개도 함께. 지금 내 앞에 있는 딸은 내 딸이 아니다. 내 딸임이 틀림없는데 내 딸이 아니다. 멀미가 난 것처럼 속이 울렁거린다.
그럼에도 나는 밥을 먹는다.
맛이 느껴지지 않아도 밥을 먹는다.
먹지 않으면 속이 더 울렁거릴 것 같아 밥을 집어넣는다.
식탁을 감싸고 있는 무겁고 어두운 공기.
작은딸을 제외한 우리는 명랑하게 말하고 쾌활하게 리액션하면서 그 공기를 걷어내려 노력한다. 그러나 쉽게 걷어지지 않는다. 작은딸을 포함한 우리 모두는 그걸 안다. 알면서도 모른 척한다.
거실 바닥에 앉은 큰딸이 가방을 끌어당긴다.
작은딸은 얼른 언니 옆에 앉는다. 충전기에 꽂힌 방전된 핸드폰마냥 바짝 달라붙어 앉는다. 언니에게 연결된 동생은 언니 몸이 움직이는 방향으로 몸을 움직인다. 동생 얼굴이 아까보다 조금 밝아진다. 방전된 핸드폰이 충전되는 것처럼.
이게 다 뭐야?
내가 가방을 들여다보며 묻는다.
얘랑 나랑 만든 초.
언니가 동생을 보며 말한다.
이거 무슨 향이지?
동생이 언니에게 묻는다.
언니가 대답한다.
너 바보야? 스티커로 표시했잖아.
잠깐만, 내가 맞출 수 있어. 이거 상탈이다. 그치?
심지어 동생은 언니를 보며 슬며시 웃기까지 한다.
가방에서 꺼낸 초를 자랑스레 거실 바닥에 늘어놓는 동생.
엄마도 골라요.
동생이 엄마에게 말한다.
난 아무거나. 너부터 골라.
아무거나가 어딨어.
초를 들고 킁킁거리는 동생. 밥 먹을 때와 사뭇 다른 표정이다. 거실은 향기로운 냄새로 가득 차고 무거운 공기도 조금 가벼워진다.
초를 정리하고 소파로 가는 언니.
얼른 언니 옆으로 가는 동생. 몸을 기울여 언니 몸에 자기 몸을 밀착시킨다. 그러고 텔레비전을 보면서 뭐라뭐라 말하고 간간히 웃음 짓기도 한다. 편안하게.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걱정되기 시작한다.
사실 큰딸은 점심만 먹고 간다고 했다. 내일 출근도 해야 하니 어두워지기 전에 출발하고 싶다고. 그런데 작은딸은 큰딸에게 몇 시간째 달라붙어 있다. 떨어지면 방전이라도 되는 것처럼.
역시나 그 시간이 온다.
언니가 소파에서 몸을 일으키자 동생이 언니 팔을 잡는다.
가지 마?
언니가 묻는다.
동생은 으응,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한다.
알았어, 조금만 더 있다 갈게.
언니가 소파에 앉자 안심하는 동생.
시간은 소리 없이 흐를 것이고 언니와 헤어질 시간은 끝내 다가올 것이다.
액셀을 밟아 속도를 올리고 마음의 준비를 한들 무슨 소용인가.
엄마인 나는 그저 초조해하고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