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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과 일과 활동

by 라엘북스


며칠 전 빌 게이츠가 유퀴즈 프로그램에 나온 것을 보았다. 시청자가 질문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일할 필요가 없는 시대가 온다면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라는 질문이 있었다.


이에 빌 게이츠는 이제 AI가 궁극적으로 발전하면 사람이 하는 많은 일을 대체하고 대신 일할 것이기 때문에, 사람이 크게 일을 하지 않고 여가를 즐기는 시대가 올 것인데, 그렇다면 이제는 '보람을 느끼는 일'을 선택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기서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는 일이란, 돈을 벌기 위해서 하는 '노동'을 가리킬 것이다.


그리스-로마 시대에서는 노동은 자유가 없는 존재인 노예가 하는 것이었다. 먹고 살기 위해 일하기 싫어서 일을 안하는 존재들은 자유인과 유력한 자들이었다. 그리스인들은 먹고 살기 위해 노동에 묶인 것을 마치 동물과 다름없다고 여겼다. 그래서 동물과 다름없는 노예에게 노동을 맡겼고 그들은 지혜를 찾는 관조적 활동을 행했다.


한나 아렌트는 <인간의 조건> 책에서 인간의 활동을 "활동적 생활""관조적 생활"로 구분한다. "활동적 생활"에는 노동, 일, 활동이 있는데, 노동은 먹고 살기 위해 행하는 것을 말하고, 일은 창조적 활동으로 작품 등을 만들어내는 것을 뜻하며, 활동은 정치적 활동이나 예술과 같은 표현 활동을 가리킨다.


"관조적 활동"은 자연과 이 세상의 진리를 찾고, 그 진리와 마주하는 자세를 뜻하고, 그리스인들은 이것이 진정한 인간다운 인간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나 아렌트는 말하길, 산업 혁명 이후 근대 사회에서 일, 활동, 관조는 부차적인 것이 되었고, 오직 교환 가치를 가진 "노동"만이 귀한 대접을 받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다보니 기계 부품에만 사용하던 "효율성"이라는 말을 사람에게도 사용하였고, 인간의 쓸모를 따지게 되었던 것이다.


이런 와중에 다시 AI 시대가 도래해서, 먹고 사는 일이 아니라, 보람된 일을 찾는 것이 우선시 되는 시대가 온다면, 인간의 인간됨을 다시 찾을 필요가 있다. 노동과 일과 활동과 관조적 생활이 적절히 합쳐진 그런 삶을 꿈꾸어 본다.



*한나 아렌트의 노동과 일과 활동, 관조적 생활에 관한 내용은 <"탈성장 교회" 이도영, 새물결플러스>에서 요약 발췌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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