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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꽈배기의 맛"-최민석-

읽고 쓰다.

by 라엘북스

그래서 오늘은 얼마나 썼는가?


서평을 쓰던지, 설교문을 쓰던지 항상 이놈의 글은 시원스럽게 써지는 법이 없다. 상상속에서야 따뜻한 차 한 잔과 함께(개인적으로 술을 마시지 않으므로) 마음을 수평선처럼 가라앉혀 주는 음악을 들으면, 원하는 주제의 글이 처음부터 끝까지 막히지 않고 써질 것 같은데, 현실은 도무지 상상대로 흘러가지를 않는다. 이 때 생각하는 문장이 "그래서 오늘은 얼마나 썼는가?"이다. 분명 어디에선가 읽었던 기억이 있는데, 기억이 나질 않아 출처를 밝히지 못하는 것이 유감이다. 다른 이들의 글 속, 멋진 표현들에서 혀를 내두를 때, 이 문장을 생각하며 그래도 꾸역꾸역 내 글을 쓴다.


"그 시간을 지켜서 글을 써두고, 생각이 나지 않으면 아무 말이라도 쓴다. 아니, 아무 말이라도 쓰면 횡설수설하고, 재미도 전혀 없을 수 있지 않느냐 한다면, 그렇다. 그러나 컨디션이 나쁜 선발투수가 로테이션이 돌아오면 강판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일단은 등판을 해야 하듯, 작가는 일단은 펜을 움직여야 한다. 던지다 보면 승부욕이 생겨서 전력투구를 할 수도 있고, 쓰다 보면 자존심이 상해서 뇌에 최대치의 긴장감을 부여해 재미있는 글을 쓸 수도 있다.
작가가 예술적 자존심을 버리지 않으면, 식상하고 안이한 표현들로 점철된 문장들이 손끝에서 계속 나오더라도, 겸허한 마음으로 내 손 끝에서 폭투가 끝나고 좋은 공이 나오기를 바라는 투수의 심정으로 매끄러운 문장을 기원한다."(p.226)


글을 잘쓰는 작가의 책을 보면, 항상 기가막힌 비유가 등장하는 것 같다. 나는 평소에 야구소식을 즐겨듣는데(사실 내일도(10/5) 류현진 선수의 포스트시즌 1선발 경기가 있어서, 벌써 마음이 설렌다.), 글을 쓰는 것에 대한 비유를 읽다보니 "암, 그렇지. 선발투수가 컨디션 때문에 로테이션을 거를 수 없지."하고 깊이 공감하게 된다. 그리고 지금도 이 글을 쓰고 있다. 물론 문제는 컨디션이 항상 나쁘다는 것이지만.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이 정도면 가장 확실한 행복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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