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상, 공채, 시스템
'당선', '합격' '계급', 세 단어의 조합이 신비롭다. 어딘가에 당선이 되고, 합격이 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환영받을 만한 일인데, 마지막에 등장하는 계급이라는 단어가 어딘지 모르게 꺼림직하다. 옛적 봉건사회가 주는 비현대적 이미지 같기도 하고, '현대 사회에 계급이 나뉘어져 있나?'라는 생각과 동시에, 자본의 유무에 따라 자연스럽게 나누어지는 현대의 서열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책 표지에는 '당선'과 '합격'의 폰트가 같은 크기로 나타나 있고, '계급'이라는 단어의 폰트는 표지의 절반을 차지할 만큼 큰 크기로 적혀있다. 이는 '당선'과 '합격'이 곧 계급을 나타낸다는 뜻일지도 모르겠다.
책 속에 나타나는 저자의 목표는 확실하다. 한국 문학계의 문학공모전과 신입을 채용하는 공채제도의 공통점을 찾아서 분석하고, 이것이 한국 사회와 한국 소설의 역동성을 잃게 만드는 것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두 가지 방법 모두 장점을 가지고 있지만, 분명히 일반적인 규제 안에 속하지 않은 천재를 발굴해 내기엔 역부족임을 주장한다. 그로 인해 획일화 되어가는 한국 사회의 단면은 독자로 하여금 처참함을 느끼게 한다.
책을 기술하는 방법은 르포의 형식을 지니고 있다. 르포란 '르포르타주'의 줄임말인데, 사전적 정의는 이러하다.
"어원은 보고(report)이며 ‘르포’로 줄여 쓰기도 하는데, 어떤 사회현상이나 사건에 대한 단편적인 보도가 아니라 보고자(reporter)가 자신의 식견(識見)을 배경으로 하여 심층취재하고, 대상의 사이드 뉴스나 에피소드를 포함시켜 종합적인 기사로 완성하는 데서 비롯되었다."(두산백과)
그러다보니 책은 철저하게 저자가 직접 취재한 자료들로 빈틈없이 채워져 있으며, 책 절반에 해당하는 분량을 이러한 자료로 열거함으로써, 위에서 말한 목표를 향해 꾸준히 달려간다. 공모전을 주최하는 담당자들의 인터뷰는 책에 생동감을 더하여주고, 수치화된 도표나 면접 실례 자료는 독자들에게 신뢰감을 불어넣어 준다.
'드래곤볼'의 주인공 손오공이 '원기옥'을 모으듯이, 시간과 공을 들여 한국 사회의 서열문화, '간판'제도의 문제가 무엇인지 다양한 루트로 수치화된 자료를 모은 저자는 책의 8장부터, 모았던 '원기옥'을 터뜨린다. 저자가 말하는 것은 결국 정보의 문제이다.
현재 사회에서 신인 작가가 쓴 한국 소설을 소비자가 지갑을 열어 구매하기 위해서는 소설에 대한 어떤 정보가 있어야 하는데, 소비자가 그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이 거의 없음을 지적한다. 그러다 보니 소비자는 일단 구매를 한 후에 그 소설이 어떠한지 알 수 있게 된다. 저자는 이러한 상황에서 소비자는 잘 모르는 물건 앞에서 지갑을 닫는 보수적인 경향을 보인다고 말한다. 이러한 상품을 경제학에서는 경험재라고 하는데, 경험재를 판매하는 입장에서는 소비자의 구매를 촉진하기 위하여 책에다가 '좋은 간판'을 멋드러지게 추가한다. 인기 있는 연예인들이 책을 광고하기 위해 등장하거나 유명인이 추천했다는 문구를 새기는 방법 등이다.
한국의 노동시장도 이와 비슷하다. 첫 직장을 구하는 대졸자 및 대졸 예정자의 업무능력을 판단하기 매우 어렵기에 기업도 경험재인 인간을 채용할 때 보수적인 경향을 보인다. 구직자들은 자신을 기업에게 보이기 위해서 '좋은 간판'으로 자신을 치장한다.
저자는 한국 소설 시장과 노동시장에서 간판이 중요하게 된 요인이 정보가 없는 '깜깜이 시장'이기 때문임을 언급한다. 책을 파는 사람과 읽을 사람, 구직자와 기업 사이에 정보 비대칭성이 너무 크기 때문에 정보가 적은 쪽은 안전한 선택을 하려고 하고, 간판은 그 상품이 안전한지 아닌지 알려주는 중요한 지표가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장에서 부조리한 간판의 위력을 떨어뜨리는 일은 정보의 교류가 이루어지지 못하게하는 두터운 성벽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내가 주장하는 것은 간판을 둘러싼 살인적인 경쟁을 줄이자는 것이다. 사람들이 간판만 볼 수 있게 하지 말고, 가게에 들어가서 물건을 살펴볼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사람들이 수시로 성을 드나들게 하자는 것이다. 그렇게 성벽을 무너뜨리자는 것이다. 그러면 보다 공평하게 기회가 돌아가고, 부조리한 계급제도 상당 부분 허물 수 있지 않을까 한다."(p. 320)
"간판의 힘은 정보 부족에서 나온다. 독자나 출판사가 등단 작가를, 구직자가 대기업을, 기업이 명문대 졸업생을 선호하는 이유는 그게 안전하다고 생각해서다.
어떤 곳에서는 여러 사람이 모여 정보를 쌓고 의미 있게 엮고 공유하고 활용하는 일이 하나의 공동체 운동이 될 수도 있을 거라 기대한다. 나는 우리가 그렇게 한국 사회에 다시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에게는 그럴 힘도, 기회도, 방법도 있다고 믿는다."(p. 429~431)
정보의 확산이 하나의 빛줄기가 되어서 사회 곳곳이 밝혀지고, 더 나아가 하나의 공동체 운동이 되어서 그로 인해 정의로운 한국 사회가 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