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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선생이다" - 황현산-

엄숙한 상식

by 라엘북스

밤이라고 하면 어둡고 보이지 않는, 혹은 미래에 대한 불안이 가득한 떨림이 눈 앞에 펼쳐진다. 아니면 깨어있지 못한 지식의 상태를 가리킬 수도 있겠다. 그런데 밤이 선생이라니 도대체 무슨 뜻일까. 출판사는 황현산 선생이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밝혔다.


“내가 비평할 때 분석하는 이유는 분석이 안 되는 것에 도달하기 위해서예요. 깊이가 있다는 말은 나는 모른다는 말과 같아요. 바위 속에 혼이 들어있다는 건 그 안에 귀신이 있다는 건데, 다시 말해 그 속에 내가 모르는 게 있단 거죠. 그게 곧 깊이가 있다는 말이거든요. 밝은 곳에 있는 가능성은 우리가 다 아는 가능성이고 어둠 속에 있는 길이 우리 앞에 열린, 열릴 길입니다. 때로는 그 가능성 자체가 문학이죠.”

-『GQ』와의 인터뷰 가운데 -


밤이 선생이라는 말은 이미 밝은 길이 아니라 아직 어둠 속에 있는 길을 조금씩 불을 밝혀가며 찾아내는 것을 뜻하나 보다. 그가 걸어온 밤의 자취를 따라 걷다보면, 머리끝이 쭈뼛서기도 하고, 그가 느꼈을 감정에 동요되기도 하며, 거대한 막이 걷혀진 현실 앞에 서기도 한다. 이 책은 80년대부터 그가 써온 글들을 모아 만든 첫 산문집인데, 놀라운 것은 그 당시의 구부러진 우리의 현대사를 지금을 살아가는 '여기'에서도 비슷하게 느낀다는 점이다. 그의 통찰이 뛰어난 것인지, 30여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올바로 서지 못한 우리의 역사가 통곡할 만한 것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황현산 선생의 글을 읽으면서, 윤동주 시인이 생각났다. 시대의 고난을 겪으며 살아가는 가운데 시를 쓰는 시인의 마음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민족의 고난을 마음으로 품었던 윤동주 시인은 스스로를 부끄러워 했다. 그렇지만 그의 시를 통해 많은 이들이 아픔을 뛰어넘는 힘을 얻었다. 그가 삶을 쉽게 살았더라면, 이러한 시들이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황현산 선생의 글도 그러한 면모가 보인다. 그가 어렵게 살아갔던 삶의 모습이 고스란히 글 속에 드러난다. 좋은게 좋은 것으로 살았다면, 자신의 이익을 탐하며, 시대에 대한 고민과 몸부림을 내면에 품지 않았을 것이다.


"기억이 없으면 윤리도 없다고 예술은 말한다. 예술의 윤리는 규범을 만들고 권장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순결한 날의 희망과 좌절, 그리고 새롭게 얻어낸 희망을 세세연년 잊어버리지 않게 하는 데에 있기 때문이다. 기억만이 현재의 폭을 두껍게 만들어준다......미학적이건 사회적이건 일체의 감수성과 통찰력은 한 인간이 지닌 현재의 폭이 얼마나 넓은가에 의해 가름된다."(p.256)


시인이 그러하였듯, 황현산 선생도 넓은 현재의 폭으로 과거를 기억하였으며, 자신은 물론이고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미래를 결정하였으리라.


"형식은 자유로워야 하지만 그것으로 추구하는 내용은 엄숙해야 한다. 말을 바꾸자면 정치는 자유로워야 하고 문화는 엄숙해야 한다. 우리는 오랫동안 그것이 거꾸로 된 세상에서 살아왔다."(p.268)


나를 둘러싼 가장 근접한 공동체는 교회이다. 교회에서 생활하다 보면 형식과 내용이 거꾸로 된 곳이 정확히 이곳 임을 자주 깨닫는다. 어느 교회에서 기도자가 정장을 입고 오지 않으면 예배부의 장로님들이 엄격하게 되돌려 보낸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리고 그 이야기를 자긍심을 가지고 당당하게 이야기하던 어떤 목사님의 얼굴에서 '무엇인가 분명히 잘못되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은 예배시간에 기도자나 설교자가 정장을 입고 넥타이를 매야만 그들의 기도를 받으시는 신이 아닐 것이다. 그보다 우선하는 것은 그리스도인 꼬리표를 달고 살아가는 삶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치열하고 엄숙하게 살아가는가라고 확신한다. 말씀대로 살기 위해, 거센 시대의 조류에 반하여 뒤트는 몸부림은 고뇌와 소망으로 가득 충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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