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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기의 말들" - 은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모두에게 말하기."(p.278)

by 라엘북스

나는 첫 발을 내딛는 것이 참 무섭다. 차가운 물 속에서 수영하기 위해 첫 발을 담그는 것도 몸에 냉기가 도는 것이 무서워 한참을 망설인다. 무섭게 안정을 추구하려는 내 성향 탓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글의 첫 줄을 써내려가는 것은 엄청난 고뇌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어설픈 첫 줄을 시작하면 술술은 아니더라도 무엇인가 표현하고 싶어지고, 문장이 만들어진다.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도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모습과 다른 모양으로 나아가려고 하면 마음이 영 불편하다. 하지만 이것도 글쓰기와 같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일단 어설픈 모습으로 준비해나가기 시작하면, 시간이 흘러 단단해진 모습으로 두려움의 껍데기는 녹아내리리라.


요즘은 책을 읽다가 작가의 문체와 표현력을 집중해서 본다. 가슴이 답답해진다. 나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을 것 같은 문장 앞에 괴로움과 신비함을 동시에 느낀다. 헤밍웨이는 말했다. "문체란, 작가가 어떤 사실을 진술할 때 드러나는 그 사람만의 고유한 어색함이다." 나만의 어색함은 무엇일까? 계속해서 써나가는 수 밖에 없다. '나'라는 불완전성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글쓰기야말로 매일의 삶 속에서 더할 것 없는 완벽한 도구다. 이렇게 시간이 흐른다면, 불완전함이 조금이나마 옅어지고, 고유한 어색함이 짙어질 날이 오겠지.


'나'라는 피할 수도 물릴 수도 없는 출발점, '나'만 살아왔고 살아가는 엄정한 조건항으로 나를 원위치시킨다. '나'라는 불완전성을 드러내야 그 불완전성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에."(p.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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