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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이루어질지도 몰라"-장상미-

미래 속 현재

by 라엘북스

'미래의 가치'와 '현재의 가치'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할까? 중고등학교 시절, 좋은 간판이 달린 대학을 가기 위해 공부하고, 대학에 들어가고나면, 좋은 간판을 가진 직장을 얻기 위해 공부한다. 또 결혼하고 집을 장만하기 위해(사실 집을 장만하고 결혼하기 위해라는 순서로 써야할지도 모르겠다.), 안전한 노후를 대비하기 위해, 지금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안전한 노후 다음엔 무엇일까? 평화로운 죽음정도? 평화로운 죽음과 평화롭지 않은 죽음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두 가지의 죽음은 열심히 노력하여 달려온 사람에게 무어라 말할까? 어쩌면 '미래'라는 말은 죽음의 다른 말일지도 모른다.


그러면 '미래'는 결국 죽음에 잡아먹히는 존재인가? 그렇지 않다. 역사 속 수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미래'를 기대하며 달려왔다. 흑인 인권 운동을 이끌었던 '마틴 루터 킹' 목사의 'I have a dream.' 연설만 기억하더라도, 그는 흑인 소년, 소녀와 백인 소년, 소녀가 한 자리에 마주할 것을 기대했다. 그리고 그 '미래'를 위해 노력했으며, 결국 그가 꿈꾸었던 미래가 도래했다. 이렇듯 미래는 우리에게 새로운 꿈과 변화를 가져다준다.


그런데 마틴 루터 킹 목사가 꿈꾸었던 미래와 현대 자본주의가 우리에게 심어주는 미래는 조금 다르다. 자본주의 미래는 철저하게 돈으로 교환되는 상품을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미래로 심어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를 위한 책임은 모두 개인의 것이 되었다.


"자본주의 발달과 함께 현대사회는 규율사회에서 성과사회로 변화했다. 성과사회의 유일한 규율은 "할 수 있다"라는 긍정의 정신이다. 그로 인해 끝없는 자기 착취가 당연시된다."(p.85)


이를 탈피하기 위해서는 '함께 살아가기'라는(여기에는 생명, 환경 등이 모두 포함된다.) 미래지향적인 가치를 유지하되, 그 삶을 현재에서 살아내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사실 이렇게 미래의 삶을 현재로 끌고들어와 살아가려고 하면, 내부의 불안과 외부의 시선으로 여간 불편한게 아니다.


하지만 저자는 세상을 변혁한 많은 사람들이 "세상의 문제를 발견했을 때 외면하거나 기존 질서에 편승하지 않고 학문과 정치 그리고 일상적 삶을 통해 대안적 가치를 모색하고 실천했다."(p.264)고 말한다.


저자의 '어쩌면 프로젝트'도 사회 이론을 일상적 삶에서 실천해낸 결과이다. 저자가 걸어온 과정을 책을 통해 만나길 바란다.


나 역시 미래를 꿈꾸며 동시에 현재를 소중히 여기기 위해 오늘도 책을 읽고, 글을 쓴다. 끊임없는 글의 퇴고가 곧 몸의 퇴고가 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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