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해
"삶의 방식에 있어서 답이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글을 시작하고 싶다. 상대주의와 다원주의가 두드러지는 현대 사회에서 '답'이라는 말이 조금은 허무하게 들린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많은 사람들이 정답을 찾아다니며 산다. 저자는 당당하게 "답은 '나'였다."라고 외치는데, 그 이유를 여행을 통해 깨닫는다.
여행 에세이라고 하면 감성이 흘러넘치는 사진들과 저자만의 독특한 문체를 떠올리기 쉽다. 역시 이 책도 여행 에세이인만큼 사진이 아주......없다. 없어도 정말 없다. 다만 넓은 세계를 보여주는 사진 없이 드넓은 사고의 확장이 있다.
그 가운데 가장 기초를 이루는 사고의 확장을 뽑으라고 한다면, 저자가 한국사회의 기존 틀 밖으로 나왔다는 것이다.
"이제껏 나는 사회가 정해놓은 나이의 틀 안에서 고민하고 행동했다. 틀의 경계선을 넘어 한 발자국 넘어가는 것이 너무 어려웠다. 선을 넘어서지 않은 채 보이지 않는 미래를 잡으려고 하니 허공에 헛손질만 했고, 잡히지 않으니 불안했다. 그래서 가끔은 선을 넘을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 것 같다."(p.20)
그러나 틀을 깨고 나오는 노력은 말처럼 간단하지 않다. 빈부의 차이에 의하여 부한 사람은 실패의 기간을 버틸 수 있는 여유가 있는 반면에 가난한 사람은 실패가 곧장 생존의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곧 이익과 위험으로 양분된다.
"오늘날 우리는 이익은 위로 가고, 위험은 아래로 분배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 경제적 양극화보다 심각한 것은 위험의 양극화이다. 아니, 경제적 양극화가 위험의 양극화를 초래한다."(이도영, '페어처치' p.196.)
그래서 저자도 실패의 정의를 이야기한다. 실패란 무엇인가? 과연 결과와 과정 가운데 무엇이 중요한가? 분명히 결과적으로 판단되는 일들이 많이 있다. 그렇지만 죽음의 문 앞으로 한 걸음씩 다가가는 인생 전체를 놓고 보았을 때, 과연 과정 하나하나를 무시하고 결과만 가지고 생각할 수 있을까? 어차피 우리 모두는 죽음이라는 동일한 결과를 만나지 않는가?(종교의 신념을 따라 그 이후를 논하는 것은 논외로 한다.) 인생의 '점'이 모여서 '선'이 되듯이, 모든 '점'들이 중요한 것이다.
그러기에 저자는 책을 통해 외친다.
"다음이라는 말에 속지 마. 다음이 있다고 확신할 수 있는 건 세상에 아무것도 없어. 그때 할 걸이라고 후회하지 말고, 지금 해봐. 진작 할 걸 이라고 후회하지 말고, 그냥 해봐. 버킷리스트처럼 거창하지 않아도 돼. 길에서 우연히 만난 친구에게 다음에 보자고 했다면, 며칠에 볼지 정하기만 하면 돼. 그냥 해봐. 지금 해봐."(p.178)
기존의 틀을 깨서 첫 발을 내딛고, 앞으로 걸어갈 때, 한 가지 기억해야 할 사실은 '내'가 중요한 만큼 다른 이의 '나'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다만 그 시작점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고민이다. 내가 이웃을 사랑하듯이 모두가 각자의 이웃을 사랑하면 그것이 결국 나를 사랑하는 길이 되고, 모두가 안전한 사회가 될는지, 나를 사랑하기 시작하면 다른 이의 나도 존중하게 되어서 모두가 안전하게 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출발은 다르지만 종착역은 같다. 그렇다면 이 두 가지가 동시에 모두 이루어지면 어떨까?
"이처럼 사회 구조적 문제는 행복해지는 길을 막아서는 높고 두꺼운 벽과 같다. 그래서 사회를 탓하기 전에 개인이 바뀌는 노력을 먼저 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어떻게 하면 스스로 행복해질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한다. 개인이 바뀐다고 해도 계속해서 사회라는 벽에 부딪히겠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사회 탓만을 할 수는 없다. 그나마 개인이라는 벽에 좀 더 낮고 얇지 않을까 한다."(p.239)
이렇게 저자처럼 개인으로부터 시작을 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높고 두꺼운 사회의 벽을 두드리기도 하는 것이다. 물론 이 두 가지를 병행하는 것도 필요하겠고, 인간이 사회적 동물임을 감안한다면 결론적으로 거대한 사회문제를 직면하는 데에까지 나아가야 할 것이다.
저자가 책 속에서 언급한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연설을 인용하여 마무리하고자 한다.
"Just do 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