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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목소리 "훈의 시대"-김민섭-

by 라엘북스

김민섭 작가는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를 통해서 개인을, '대리사회'를 통해 사회를, 이후 필연적으로 '훈의 시대'를 통하여 시대를 조망한다고 말한다. 점진적으로 커져가는 그의 통찰이 반가웠고, 덕분에 나의 사고도 확장할 수 있었다.


"언어는 한 사람의 몸을 만들어낸다. 먹는 것뿐 아니라, 일상 공간에서 오랜 시간을 두고 쌓인 언어들 역시 그 개인의 몸이 형성되는 데 기여한다."(p.63)


어렸을 때, 어떤 집단 안에서 피해자가 왜 목소리를 내지 못할까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조금만 아니라고 이야기하거나 거부의 소리를 냈다면 괜찮을텐데하고 말이다. 하지만 개인을 억압하는 집단이 언어의 힘을 알았기에, 그 구조가 무너지지 않게 하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존속시키는 언어의 집을 지었을테고, 바둑돌이 상대 돌을 감싸듯, 그렇게 개인을 둘렀을 것이다. 물론 개인의 성향차이가 있겠지만, 그것에 대항하여 목소리를 내는 것이 얼마나 힘든가를 깨달았다.


나를 둘러싼 언어는 과연 무엇일까? 나는 어떤 언어를 먹고 자랐을까? 책을 읽고 곰곰히 생각해본다. 무엇보다 나 역시도 누군가에게 언어를 만나게 한 발화자일터이니 반성의 시간도 필요하다. 군생활을 할 때에 오히려 계급이 낮았을 때가 편했었다. 그냥 위에서 하라는 것만 하고, 하지 말라는 것은 안하면 되니까. 이는 내가 사유함 없이 그저 손쉽게 나를 둘러싼 언어에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 것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성찰 없이 따라가는 것은 매우 쉽다. 불화가 생길 일도 없고, 내 편이라는 인식을 쉽게 심어준다. 그러다보니 주체로써 사유하며 나아가는 발전도 당연히 없다.


이래서 세계와 늘 불화하며 나아가야 한다고 하나보다. 불화 자체를 위하여 갈등을 일으키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올바르게 나아가고 있는가에 대한 반성으로서의 불화이다.

이것은 '왜'라는 질문을 던져보면 안다. '원래', '당연히', '일반적으로'라는 말들은 '왜'라는 궁금증 앞에서 힘을 잃는다. 그러나 권력자들은 그걸 알기에 '왜'라는 생각 자체를 하지 못하도록 계속 세뇌시킨다.


"회사는 개인을 통제하고 스스로 검열하게 하는 가장 간편하고 원초적인 방식이 그 공간의 언어에 있음을 잘 알고 있다. 이를 인식하지 않으면 개인은 아무런 사유 없이 물들게 된다."(p.220)


회사로 대표되는 집단은 이 원초적인 방식이 그 공간의 언어에 있음을 어떻게 알고 있는 것일까? 회사가 이익을 우선으로 하는 집단이기에 그러할까? 이익을 위해 사람의 노동력을 재료로 써야하기 때문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자연스럽게 알고 있는 것 같다. 사람의 노동력만 재료로 써주면 좋은데, 사람 자체를 재료로 쓰기까지 하니 사실 더 큰 문제이다.


"개인은 계속해서 자신과 자신이 속한 공간에 물음표를 보내지 않으면 누구나 보수화될 수밖에 없다."(p.186)


개인을 둘러싼 언어를 통제 하는 것이 우리 외부에서 일어나기도 하지만, 반대로 우리 내부에서도 자신을 옭아매는 언어가 생산되기도 한다. 이것은 역설적으로 질문의 언어를 하지 않으면 우리 안에 있는 언어는 죽은 언어가 되고 나를 옭아매기 시작한다. 하나의 도그마가 되는 것이다.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질문을 멈춘다면 우리에게 몸의 노화가 진행되듯이, 우리의 사고에도 보수화라는 노화가 찾아온다.

그러나 몸의 노화가 늦출 수는 있어도 막을 수는 없는 필연적 결과라면, 사고의 노화는 막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책을 통한 간접 경험과, 그에 따른 끊임없이 이어지는 사유와 질문이 있다면 말이다. 이것의 힘은 개인에게서 멈추지 않고 우리를 둘러싼 사회에도 영향을 미친다.


"사유하는 개인은 무한한 힘을 가진다는 사실을 증명해 낸다. 각각의 개인이 당장 무엇을 바꿀 수는 없지만 그러한 개인들의 총합은 기존의 제도와 문화에 균열을 낼 수 있을 만큼 강하다."(p.202)


개인의 책임과 사회의 책임 중에 어느 한 가지를 지나치게 강조하면 문제가 된다. 우리는 두 가지 모두로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개인으로 시작했다면 그 끝 지점은 사회에 가서 닿아야 하고, 사회에서 시작했다면 그 끝이 개인에게 다가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책이 개인과 사회를 잇는 교차점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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