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요?
두 가지로 말하기를 전제 한다면, 세상은 점점 살만해지고 있으니 긍정적인 자세로 보아야 한다, 혹은 아직도 불합리한 것이 많으니 부정적인 태도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말할 것입니다.
이에 <팩트풀니스>의 저자 한스 로슬링은 실제 세상이 놀라운 진보를 이루었다고 말하고 도표를 증거로 제시합니다. 사실에 근거한 세계관을 말하는 것이지요. 그러면서 사람에게 있는 10가지의 본능을 통제해야 낙관적인 세상을 볼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 가운데 하나는 비난 본능입니다.
비난 본능은 왜 안 좋은 일이 일어났는지 명확하고 단순한 이유를 찾으려는 본능이다. 최근에 내가 이 본능을 느낀 것은 호텔에서 샤워를 할 때였다. 온수 수도꼭지를 끝까지 돌렸지만 물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가 몇 초 지나 쩔쩔 끓는 물이 쏟아져 살을 데고 말았다. 순간적으로 배관공에게 화가 치밀었다. 이어서 호텔 지배인, 그리고 찬물을 쓰고 있을지 모를 옆방 투숙객에게 차례로 화가 났다. 하지만 누구도 비난할 수 없었다. 누구도 내게 고의로 해를 끼치거나 태만하지 않았으니까. 인내심을 가지고 수도꼭지를 천천히 돌리지 못한 내 잘못이었다.
뭔가 잘못되면 나쁜 사람이 나쁜 의도로 그랬으려니 생각하는 건 무척 자연스러워 보인다. 우리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 때 누군가가 그걸 원해서 그리되었다고 믿고 싶고, 개인에게 그런 힘과 행위능력이 있다고 믿고 싶어진다. 그러지 않으면 세계는 예측 불가능하고, 혼란스럽고, 무서울 테니까.
(중략)
세계의 중요한 문제를 이해하려면 개인에게 죄를 추궁하기보다 시스템에 주목해야 할 때가 많다.
한스 로슬링, <팩트풀니스>, 294.
그러나 저는 한스 로슬링이 말한 비난 본능은 특별히 '개인에게 대하여' 자중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위에서도 말하듯이 "세계의 중요한 문제를 이해하려면 개인에게 죄를 추궁하기보다 시스템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다른 이를 대신 비난하는 것은 분명히 잘못된 행동입니다. 하지만 다시 위 상황 속으로 들어가 생각해보면 개인이 수도꼭지를 인내심을 가지지 않고 확 바꾸어도 뜨거운 물에 데이지 않을 시스템을(제대로 된 설비)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것입니다.
그저 내 자신만을 변호할 비난은 자중해야 하지만, 변해야하는 사실을 비난하는 것은 오히려 사실입니다.
<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의 저자 오찬호는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팩트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이 사회가 그래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이 순간에도 불평등에 노출되어 삶이 위태로운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전자는 후자를 드러내는 걸 두려워하지 않을 때 지속적으로 그 방향성이 유지된다. 세상이 좋아지고 있다는 사실이, 세상의 불평등조차 낙관하라는 태도로 이어져서는 안된다. 지금 아파하는 사람을 보며 한 사회의 불평등을 탓하는 건 확증편향과 무관하다. 오히려 그걸 무시하고 ‘그래도 과거보다 나아졌다’는 망상에 빠지는 게,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착각이다.(출처: http://m.khan.co.kr/view.html?art_id=201908182057015)
그는 "세상을 끝없이 의심하는 비관적 자세는 결과를 낙관적으로 만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하는데요, 세상을 대하는 낙관적 자세와 비관적 자세는 공존해야 하는데, 개인과 사회를 구분하여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더' 좋은 세상을 위해 '덜' 좋은 세상을 모른 척 하지 않고 발견하려는 자세가 필요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