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여행 중에 나의여행 목표 중 하나, 유럽 여행에서 북유럽 스타일 뜨개를 보고 올 수 있다는 기대가 있었다.
코로나로 그 기대를 미루어야 했을 때 그 어느 나라보다 아쉬운 나라가 있었다.
가장 가 보고 싶었던 나라, 아일랜드의 아란 제도였다.
아란 제도는 트레킹과 자전거를 즐기는 여행자의 천국이라고 소개된 글 덕분에, 나의 뜨개 여행 목적과 자전거 여행, 그러니 남편과도 부합한 여행지가 될 거라는 설렘을 품고 있었다.
아일랜드에 도착해 휴식을 겸한 한 달 이상의 시간을 보내다 오려는 장기 계획을 세웠기에 아쉬움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왜? 미국에서 유럽을 먼저 가지 않고 멕시코를 거쳐 중미로 내려갔을까?
뉴욕서 시작된 여행의 동선, 편의성 때문이었지만, 아쉬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아란 무늬를 일명 꽈배기 무늬라고 말했었다.
그건 나뿐만이 아니고 예전에는 많이들 그렇게 불렀다.
아란 무늬로 짜인 스웨터는 영국의 전통 니트를 부활시킨 글래디 톰슨이 1955년 발행한 "건지와 저지 무늬 뜨기" 책을 출판함으로써 더 많이 알려지고 아란 무늬 스웨터는 최고의 예술이라는 찬사를 받게 되었다고 들었다.
혹시, 영국에 가면 그 옛 도서가 있지 않을까? 현재의 아란 무늬 책과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크게 다르지는 않을 듯싶지만, 옛 고서가 된 책 냄새를 맡아보는 행운이 깃들기를 살짝 기대한 건 사실이었다.
아란 무늬에 얽힌, 전설처럼 전해지는 슬픈 이야기가 있다. 고기잡이 나가는 어부들의 아내들이 스웨터에 좀 더 추위를 잘 이길 수 있게 하려고 촘촘하게 많이 꼬아서 밧줄처럼 단단히 짜 넣은 게 아란 무늬라고 했다. 가정마다 뜨는 아란 무늬 모양이 모두 달랐기에 그들의 고기잡이 배가 난파돼 조난당했을 때 그 스웨터 무늬로 신원을 확인했다는 가슴 아픈 이야기였다.
상술적인 스토리 텔링이란 말도 전해지지만, 어느 나라나 겨울 바다는 춥다. 아란 제도의 겨울바다는 그보다 더 거칠기로 유명하다고 했다.
그 이야기의 진위가 어떻든 나는 즐겨 뜨는 아란 무늬의 유래를 모르고 떴을 때와 그 이야기를 알고 나서 뜰 때와는 분명 다른 느낌이었다.
가족의 생계가 어업이었으니 가족을 위해 거친 바다에 목숨 걸고 고기잡이 나가는 어부 남편, 아들의 무사 귀환을 기도하며 한 코 한 코 정성 담아 떠 올라갔을 그 시절 여인들의 애달픔이 존재했던 건 사실이기에 그들의 진심, 사랑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그들에게서 유래된 듯 한 각 가정의 아란 무늬는 그렇게 가문을 상징하는 무늬로 자리 잡았다는 얘기도 있다.
아란 무늬 스웨터는 현재도 꺼지지 않는 인기 아이템으로 매년 사랑받고 있다. 지금도 셀 수 없이 많은 아란 무늬 스웨터가 만들어지고 있고, 전 세계 많은 니터들에 의해 멋진 아란 무늬 손뜨개 스웨터들이 계속 탄생하고 있다.
캠핑카 세계여행은 차량을 이동하며 여행한 특성상 의외로 시간이 많이 주어졌다.
누군가 캠핑카 세계여행을 계획한다면 그 시간이 지루해지지 않으려면 뭔가 할 수 있는 거리, 그러니까 취미가 필요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장기 여행이기에 날마다 관광으로 채울 수는 없다. 평상시 자기만의 취미가 있다면 캠핑카 세계여행 중에 그 취미는 놀랍도록 영감을 얻어 더 풍요로운 여행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경험자로서 말할 수 있다.
여행은 글을 쓰고 싶게 했고, 풍경을 스케치하고 싶게 했고, 사진을 좀 더 예술적으로 멋지게 촬영하고 싶은 욕망을 불러일으켰으나, 할 줄 아는 분야가 아니었기에 아쉬웠다.
그러나 나에게는 뜨개가 있었다.
여행 후 현재는 여행 중에 얻은 영감을 뜨개로 풀어내고 싶다는 욕망을 하나씩 실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