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학교에서 영어교육을 전공했다. 그래서 흔히 어떤 사람을 만나거나 모임을 갔을 때 내 전공을 이야기하면 하면 ‘와, 영어 잘하시나 봐요’ 말을 듣게 된다. 나도 맨 처음 대학교에 입학할 때는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예상과 다르게 내가 대학교에서 배운 교육은 실용영어와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 생각에 대학교에서 영어를 전공했다고 해서 영어를 잘하기 힘들다. 내 경험을 토대로 그 이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도록 하겠다.
나는 1학년 때는 영어 독해, 영문법, 영작, 원어민 교수 회화 수업처럼 영어 실력을 향상시키는데 중점을 둔 과목들을 많이 수강했다. 얼핏 들으면 좋은 커리큘럼인 것 같지만 현실적으로 이 과목들은 실망스러운 점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예를 들어 실용영어회화 과목 같은 경우는 원어민 교수 한 명에 20여 명의 학생들로 구성된 수업이었기 때문에 결국은 일반 회화학원처럼 학생들끼리 회화 연습을 해야 했다. 학생 숫자가 많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원어민과 학생이 일대일로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영어 청해 수업은 영화 대본을 교재로 사용하고 영화로 영어를 공부한다고 해서 기대를 많이 했지만 실제로는 시험에서도 영어를 듣지 않고 대본을 외워서 적어야 하는 암기 수업이었다. 그나마 이런 과목들마저도 학년이 올라가자 학문적인 과목들로 교체됐다. 내가 고학년이 되면서 배운 과목들은 음성학, 통사론, 영미 문학 등 영어 실력과는 무관한 과목들이었다.
음성학은 해부학처럼 사람 머리 그림을 놓고 발음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배우는 과목이었다. 물론 처음 외국어를 배우는 사람에게 발음은 중요한 요소이긴 하다. 그러나 나는 이 수업에서 영어 발음을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하고 발음법을 책으로만 배웠다. 발음과 관련된 과목에서 소리를 듣지 않고 수업을 하다니. 크게 실망한 나는 음성학 강의 때 강의는 듣지 않고 다른 과목들 과제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이는 다른 과목들도 마찬가지였다. 통사론이라는 과목은 실용영어와 더욱 거리가 먼 과목이었다. 이 과목은 문장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쪼개 보는 수업이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주어, 동사로 쪼개는 것이 아니라 다소 독특하게 나눈다. 예를 들어 NP면 명사구 Noun Phrase고 VP면 동사구 Verb Phrase였는데 이 요소들이 위 그림처럼 분리되는 과정을 배운다. 그런데 나는 지금까지도 이게 왜 영어를 잘하는데 필요한 건지 알지 못한다.
이 외에도 영미문화권 문학을 배웠는데 이는 영국과 미국의 문학을 배우는 것이었다. 흔히 우리가 고등학교 때 배웠던 시, 소설을 영어 버전으로 배운다고 생각하면 된다. 문제는 한 학기에 한 나라의 문학을 다 배운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점이었다. 당연히 교수님은 강의를 자세히 할 수 없었고 그저 몇 가지 작품 소개만 간단히 하는데 그쳤다. 그리고 시험은 늘 그렇듯이 또 암기 시험으로 진행됐다.
그렇다면 왜 대학교에는 이렇게 실용영어와 상관없는 과목들을 가르치는 것일까? 가장 큰 이유는 임용고시 합격률을 높이기 위해서였다. 고등학교 교육과정이 수능이라는 시험에 초점을 맞추고 있듯이 영어교육과는 임용고시를 위해 교육과정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래서 학생들도 이 과목들을 재미있어서 듣기보다는 어쩔 수 없이 듣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실제 영어실력을 키우는 것은 결국 학생들 개개인의 노력에 달릴 수밖에 없고 결론적으로 졸업할 때쯤이면 영어 전공자와 비전공자의 영어실력은 거의 없게 된다. 영어 비전공자 학생들도 토익, 오픽 등 공인영어시험을 준비하고 어학연수를 다녀오면서 영어 전공자보다 더 좋은 영어실력을 갖추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처럼 대학교에서 영어를 전공한 사람들이 모두 영어를 잘하는 것은 아니다. 영어 전공자들도 실제로 영어를 잘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많이 들어보고 말하는 연습을 많이 해야 한다. 그러므로 누군가 영어를 잘한다면 그 사람의 전공과 상관없이 응원과 격려의 박수를 보내줬으면 좋겠다.